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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Jan 23. 2024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오만하게 이런 생각을 했다. 너무 당연한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그게 부족하지도 넘쳐나지도 않도록 국가가 개입하는 것. 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할 수 있어야 하는 것. 다양한 개인과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것. 이 세 가지로 감히 이 깊은 책을 요약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일련의 교육과정을 통해 기본 상식처럼 습득해온 개념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이 당연한 개념을 길게 풀어놓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답은 책에 있었다. 논의 자체가 유의마하다는 것이다. 밀은 ‘죽은 신념'을 언급하는데,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고 활발히 논의되지 않는 진리는 살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즉, 무의식적인 수용은 답습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자유는 당연한 가치가 되었지만, 어떤 맥락에서 그 가치가 구성되었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고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우린 자유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이런 사회적인 가치는 한번 얻으면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달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논의가 중요해보인다. 독서모임에서도 우리는 밀의 서술에 동의하고 반대하며 세상을 다양한 시각으로 살펴보았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내용엔 환호했고, 엘리트 남성으로서의 편파적인 시각을 꼬집었다. 이렇게 이 책에도 옳고 그름이 가득했다. 밀은 이런 경험을 가리켰던 거겠지.


밀의 논리에 따르면, 토론의 목적은 승패의 구분이 아닌 혼합이 된다. 누가 옳고 그른지 겨루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의견 속에서 배우고 참고할 만한 점을 찾아서 함께 논리를 개선해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구석구석 둘로 나뉜 세상에 꼭 필요한 접근법이다. 이분법은 뒤섞음으로써 해결된다. 각자의 의견을 어떻게 뒤섞고 재배치할 수 있는지 찾아가는 게 토론이라면, 국회에서 그렇게 싸울 일도 없을 것이다. 사회 발전 또는 문제 개선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서로 다른 관점을 공유하고 혼합해나가는 과정이 강조된다면 국회의 모습은 어떻게 될까. 밀의 말대로 대화하고 토론한다면, 정치인 사이의 대화가 비하로 점철되진 않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밀의 논의는 유토피아적이기도 했다. 이 책에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기대가 있었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잘못을 고쳐나가는 특질'이 있다는 문장이 대표적이었다. 그는 우리가 개선과 발전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신뢰하고 있었다. 당시의 부족한 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으나, 이렇게 정성 들여 자유에 대해 논하고 있는 것 자체로 미래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쉽게 자유론을 이해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자유는 태초부터 자연스럽게 존재했던 상태가 아니라 노력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늘 새삼스럽게 상기하는 사실이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은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외침과 노력 끝에 형성되었다. 21세기에 살아가고 있음이,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 제도 안에 편입되어 살아가고 있음이 감사했다. 그리고 여전히 문제가 많은 이 사회에서 여전히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떠올렸다. 우리가 할 일이 많다. 과연 미래의 누군가는 그 시대를 긍정할 수 있을까.


세상을 넓고 깊게 논하는 책을 아주 사적으로, 협소하게 읽어서 이 후기가 얄팍할까봐 걱정도 되지만, 어떤 의견이든 자유롭게 표현하라던 밀의 권유에 따라 용기 있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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