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rene Aug 15. 2021

“지금 행복하세요?”

행복이 대체 뭐길래

존 스튜어트 밀은 “행복하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곧 행복하지 않게 될 것이다.”라는 말로 쾌락의 역설을 설명했다. 행복은 붙잡으려고 애쓸수록 우리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행복은 부산물이지, 절대 목표가 될 수 없다. 행복은 삶을 잘 살아낼 때 주어지는 뜻밖의 횡재 같은 것이다.
- 의식적으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는가? 또는 행복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고 찾으려 한 적이 있는가? 그래서 진정으로 행복해졌는가?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인생목표

대학교 때 인생의 목표는 행복하게 살기였다. 어떤 일을 할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대학 강의 중 하나도 최인철 교수의 행복에 관한 심리학 강의였다. 행복하게 사는 게 목표인데 행복한 게 구체적으로 뭘까? 얄팍한 지식으로 내린 정의는 긍정적인 심리 상태를 부정적인 심리 상태보다 더 잦은 빈도로 강하게 느끼는 것이었다. 맛있는 음식만 먹어도 입에서 ‘아이 행복해~’라는 소리가 몇 번씩 나왔다. 행복하다는 단어를 습관처럼 쓰며 실제로 상당히 행복했다고 느꼈던 것 같다.


꼭 행복해야만 해?

일을 하면서 긍정적인 심리 상태보다는 부정적인 심리 상태를 더 자주 겪는 것 같다. 기쁜 일은 금세 지나가버리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나는 일은 더 크게 와닿고 오래 남는다. 일하는 게 재밌긴 한데, 일을 하면서 ‘행복해!’라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맞는데 내가 과연 행복하지 않은 걸까? 내가 지금 문제가 있는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최인철 교수는 ‘아주 보통의 행복’에서 이렇게 말한다. “행복이 되게 특별한 느낌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항상 즐겁고 신나야만 행복하다는 인식이다. 긍정적인 경험을 할 때 ‘좋다~’라는 말이 나온다. 사실 좋다는 것과 행복하다는 것이 결국엔 동일한 개념인데, ‘좋다’와 ‘행복’이라는 단어의 간극이 너무 크다. ‘행복’을 ‘좋다’의 수준으로 가지고 내려와 상식적이고 자연스러운 개념으로 만들어야 한다.” 나는 지금 행복할까? 너는 지금 행복해?라는 질문을 묻는 순간 내재된 공격의 뉘앙스와 함께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믿게 된다. 행복이라는 단어에 대한 강박을 내려놔야 한다.


꼭 행복해야만 할까? 행복, 기쁨, 즐거움, 고통, 불안, 침착, 화, 짜증, …. 짧은 27년 인생 살아보니 이 중 어느 것 하나 피할 수 없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나 많다.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도 좋겠지만 희로애락의 감정을 잘 수용하고, 물결에 몸을 맡겨 잘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가령 예상치 못하게 발견한 맛집이나, 엄청 큰 무지개가 펴서 길거리 사람들과 다 같이 쳐다본다든가, 길거리에서 발견한 꽃밭이라든가. 이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기쁘면서도 안타까웠다. 일상에서 ‘행복’이라는 긍정적인 경험을 단어로 구체화하여 말할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질 것이다. 일상생활의 순간 하나하나가 모여 우리는 행복하다. 하지만 이 순간들이 절대 소소한 게 아니라고, 가장 큰 행복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만족해

그래서 나만의 행복을 재정의했다. 만족스러우면 된다. 오늘 야근을 해 기진맥진하더라도 만족스러우면, 침대에 누워서 뒹굴뒹굴 보낸 하루가 자랑스럽진 않아도 만족스러우면, 그러면 됐다. 오늘은 아침부터 다양한 주제로 북클럽 분들과 알찬 토론을 하고 몇 년 만에 만난 친구와 어제 만난 것처럼, 목이 아플 정도로 수다를 떨고 집에 돌아와 회고를 쓰는 하루다. 오늘 하루 만족스럽다!!

작가의 이전글 따릉이 타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