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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Dec 19. 2020

인생은 코끼리처럼

슬퍼하고 돕고 사랑하기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동물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는 어린이드라마가 끝난 후 바로 동물의 왕국이 시작했는데, 사자, 악어, 치타 등을 보고 있노라면 동물원 사육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때가 있었다. 동물의 세계는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심금을 울릴 때가 있다. 몇 년 전 본 코끼리들이 그러하다.


코끼리는 굉장히 복잡한 동물이다. 지능이 높은 만큼 감정도 풍부하다. 실제로 동료를 잃은 코끼리가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은 사례가 있으며, 엄마를 잃은 아기 코끼리가 몇 시간이고 눈물을 흘리는 등 코끼리는 인간 못지않게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다. 그런 코끼리의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코끼리 언어연구학자는 코끼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 내는 소리를 수집하여, 그 소리가 ‘도와줘요’라는 언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했다. 학자는 아기코끼리가 포식자에게 둘러쌓였을 때 내는 소리를 녹음해, 야생의 한 코끼리 무리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길을 가던 코끼리 무리는 녹음된 아기코끼리의 소리를 듣자,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긴장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인간의 시각으로 보자면, 위험에 빠진 아기코끼리를 구하기 위해 행동한 것이리라.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기코끼리의 소리를 듣고 우르르 달려가는 코끼리 무리의 모습은 경이로웠다. 결국 코끼리 무리에게 들려주었던 소리는 코끼리 세계에서 ‘도와줘요’라는 언어임에 힘이 실렸고, 코끼리는 그들만의 언어체계를 갖고 있는 고등 동물이라는 점, 그리고 그들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협동까지 갖춘 아름다운 생명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직업이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코끼리의 언어를 따로 연구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니. 실제로 지금까지 내게는 코끼리 언어연구학자가 멋지고 매력적인 일로 다가온다. 온 몸을 구르며 코끼리를 좇아 그들의 삶을 연구하는 사람들. 누군가는 동물을 연구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는다. 인간과 또다른 생명체를 연구하는 것은 자연에 대해 겸손함을 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침팬지 연구에 열정을 쏟은 제인 구달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내게 롤모델이다. 무언가에 일생을 바칠 정도로 마음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을 준다. 과연 내게도 애정과 증오를 모두 담아서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올까.


앞으로의 무궁무진한 내 삶이 고민없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도움을 요청하는 낯선 이의 목소리에 주저않고 달려갔던 코끼리 무리처럼. 그리고 인간 외의 또다른 생명체를 알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주저없이 그들을 향해 직진하는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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