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정의 내림
‘노티크(Notique)’라는 웹사이트에서 뉴스레터를 받고 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해당 사이트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일주일에 한 번씩 다양한 주제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이죠. 직장에서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면 노티크의 뉴스레터 질문에 나만의 답변을 정성껏 쓰곤 합니다. 이번 주의 주제는 ‘내가 생각하는 실패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였어요. 실패의 기준이라니,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술술 써 내려갈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가진 실패의 경험 덕분이었겠죠. 그때 쓴 글에 좀 더 살을 붙여 브런치에도 남기고 싶어 펜을 듭니다(원래는 패드로 글을 쓰지만, 글을 쓰는 모습을 가장 멋있고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건 역시 ‘펜을 들다’인 것 같아요).
계약기간을 모두 마치지 못하고 중도 퇴사를 한 적이 있어요. 그것도 좋게 나온 게 아니라 관계, 건강, 정서 등 내 모든 것이 뒤틀린 상태로 끝낸 거라 엉망진창이었어요. 나 자신과 약속했던 기간을 채우지 못했고 마무리도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나온 터라,
“얘들아 나 때려치웠어!!”
라고 세상 친구들에게 시원하게 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어요. 조용히 귓속말하듯,
“나.. 그만뒀어”
라고 몇 명에게만 말하는 꼴이었죠. 제 인생 첫 실패의 경험이었어요. 실패의 맛은 아주아주 썼어요. 어떻게 다시 일어서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어쩌면 영영 일어서지 못할 것 같았어요.
나 혼자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없다는 판단이 섰어요. 저는 도움을 청하러 갔어요. 문을 두드려 내 상태를 고백했어요. 그 고백이라는 행위는 쉽지 않았어요. 실패의 기억을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읊조려야 했거든요. 그 과정에서 내가 ‘실패자’가 된 느낌을 다시 마주해야 했고, 그 당시 나도 분명 미성숙하게 행동한 점이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어요. 부끄럽고 괴로웠죠.
하지만 직면하고 나니 그런 생각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중요한 건, 내가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었어요. 계약기간을 다 채운다고 해도 내게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을 스스로 내렸던 나. 힘든 시간을 극복하기 위해 도움을 청했던 나. 외롭고 슬펐던 시간을 직면하는 나. 나라는 사람은 솔직하고 용감한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이 저를 지탱해주었고,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게 해 주었죠.
영원할 것만 같던 어두운 터널을 지나와, 지금은 그때의 시간이 제게 튼튼한 마음의 뿌리가 되어주고 있어요.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누군가의 마음을 좀 더 깊이 공감해줄 수 있게 되었고요. 시야가 더 넓어졌다고나 할까요. 쓴 고배도 덜 쓰게 승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정말 강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것이 곧 마음 근육이라는 것도요.
지금 실패의 터널을 터덜터덜 걷고 있는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꼭 도움을 청하라고요. 우리는 생각보다 강하면서도 약하기에, 혼자서 극복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요.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빠르게 인정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이미 당신의 마음 근육은 한층 더 단단해져 있을 거예요.
저 또한 누군가에게 소소한 위로가 되고 싶어 제 경험을 몇 자 적어보았어요. 지금도 상대방의 슬픔을 위로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괜찮아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