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에 머무르는 연습
최근 멋진 글을 읽었습니다. 사실 한 번에 이해되지는 않아서 여러 번 틈 날 때마다 읽고 있는데요. ‘적극적인 기다림’이라는 내용입니다.
‘적극적’과 ‘기다림’이라는 두 단어는 어쩌면 아주 상반되어 보이기도 합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적극적인 느낌을 주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수동적이고 안주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20세기 마지막 영성가 헨리 나우웬이 ‘적극적인 기다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더군요. 사실 아직도 그 의미가 정확히 와닿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이해한 것에 의하면, 기다리는 자세에도 적극적인 자세가 있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모든 사회가 잠시 멈추어진 때에도 겉으로는 그 자리 그대로인 듯 보이나, 실제로는 그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발전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거죠. 물 밑에서 열심히 발길질을 하고 있는 백조 같이요.
열심히 노력하고 발전하고 있는데 어떻게 겉으로는 그 자리 그대로일까? 의아하긴 합니다. 알 것 같으면서도 두리뭉실하게 다가오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분명한 건, 그 짧은 글 하나가 제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는 겁니다.
올해는 참 많은 생각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곧 앞둔 30대, 결혼으로 꾸린 새로운 가정, 그로 인한 내 삶의 자잘한 변화들까지. 그 변화들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좋으련만, 어느 것 하나 그냥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작은 것 하나까지 곱씹어 생각하고 이게 내게 맞는 옷인지 아닌지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잠시 슬펐던 건, 요즘의 제 삶이 잠시 멈추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안정적이라고 말합니다. 안정적인 직장과 배우자, 쉼이 있는 삶. 뭔가 심심하달까요. 20대를 통틀어서 이렇게 안정적인 일상이 반복되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어색하기도 해요.
이전까지는 자리에 머무르는 법을 몰랐습니다. 머무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또 머무르지 않아도 되었어요.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조금씩 차 가면서 머무르는 법을 배우는 것도 필요하게 되더군요. 지금이 그 시기인 듯합니다. ‘잘’ 머무르는 법을 배우는 시간, 적극적으로 기다리는 시간.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회의감을 자주 느끼곤 했습니다. 내가 바라던 일과는 다르게 ‘멋지지 않다’고 느꼈거든요. 하고 싶었던 일은 아니었기에 다른 ‘멋진 일’을 향해 나아가고만 싶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에 지레 겁을 먹고 그저 우울해하기만 했어요. 지금 자리에 있는 제 자신을 원망하면서 말이죠.
그런데요. ‘적극적인 기다림’에 의하면, 지금 있는 자리에서도 저는 무한히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현실에 그저 징징거리는 게 아니라,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러면서 내게 있는 여러 잠재력들을 가꾸어 가는 것.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예를 들면, 저는 영어를 쓰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외국인들과 일하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 있는 곳에서는 외국인을 만날 일도, 영어를 사용할 일도 없어요. 그런 현실을 그저 아쉬워하는 게 아니라, 이 자리에서 내가 영어를 사용할 일을 만들면 되더라고요. 그래서 올해까지 영어로 된 작업물을 만들기로 리더 분과 약속도 했습니다. 작은 다짐 하나를 했을 뿐인데, 계단을 하나 오른 것만 같아 뿌듯했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내가 닦을 수 있는 적극적인 자세란, 꾸준히 글을 쓰는 것, 영어로 말하기를 쉬지 않는 것, 끊임없이 읽고 사유하는 것, 그리고 튼튼한 몸을 만드는 것으로 정리해 봅니다. 지금 제 분야에 대해 계속 탐구하는 것은 기본 값이고요.
여러분이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가질 수 있는 적극적인 자세는 어떤 것이 있나요?
머무른다는 것이 아직도 어색합니다. 20대에는 계속해서 움직일 용기와 에너지를 배웠다면, 새로운 30대를 맞이해서는 머무르는 법, 그리고 머무름 안에서 노력하고 발전해가는 법을 배워가고 싶습니다.
‘적극적인 기다림’을 ‘단순함과 열정’으로 다르게 표현해보고 싶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심플하게 받아들이되, 끊임없이 타오르는 작은 촛불을 마음에 간직하고 사는 것. 내가 도태되어 가는 건 아닐까, 이대로 멈춰버리는 건 아닐까 불안한 분들께 제 작은 글이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만의 길을 그려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