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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Jun 19. 2021

한 생명의 무게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을 때

한 주가 무사히 지나갔다. 이번 한 주는 시작부터 길었다. 월요일, 화요일 모두 12시간 업무를 하고 늦게 퇴근을 했다. 근무시간이 주 40시간을 넘기면 안 되는 병에 걸렸기 때문에 목요일은 오후 반차를 썼다. 그렇게나마 이번 한 주를 겨우 넘겼다.


금요일 퇴근 후 버스를 타고 친구와의 약속 장소로 가면서 문득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동학대를 다루는 곳이다. 학대로 판단된 가정에 대해 개입을 하고, 학대피해아동을 보호하고 그들이 안전한 가정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을 한다.


사실 조심스럽다. 언젠간 아보전에서 일하고 있는 내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었지만, 아동학대 이슈에 대해 사람들이 예민해졌고 무엇보다 아보전에 대한 인식이 어떨지 조심스럽기에. 이미 내 글 서랍장에는 이전부터 썼던 아보전 일기가 몇 편 있지만 아직 꺼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은 아보전, 아동학대, 이런 이슈를 넘어서 그냥 한 직장인으로서 글을 쓰고 싶다.






이 일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발령을 받아 왔다. 다행히 생각했던 것보단 재미있고 잘하는 것 같다.


물론 그저 즐겁지만은 않다. 한 생명의 무게, 한 가정의 사회적 생명의 무게를 이보다 더 절절히 느낄 수가 없다.


사람을 다루는 일은 신중을 필요로 한다. 내 말 한마디, 내 행동 하나가 상대방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한 순간에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이곳에 있으면서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대화법, 상대의 마음을 수용해주는 질문법을 배운다.


감사나 보상을 원해서는 안 된다. 어찌 됐든 자발적으로 우리를 만난 사람들이 아니기에, 좋은 일로 우리를 만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관계가 어느 정도 쌓였다 싶었다가도, 한 순간에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일도 부지기수다. 결국 우리는 그들에게 ‘만나지 않았어야 할 사람’이다.


아무리 좋게 마무리가 되는 가정이 있다 해도, ‘다음에 다시 만나요’라는 말을 할 수 없다. 우리를 다시 만난다는 것은 가정 내에 좋은 일이 일어난 게 아니라는 것이니까. 이 점이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만나는 사람으로 인해 힘이 들 때 많은 생각이 든다.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지?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지? 내가 안전하긴 한 건가?



사람을 다루는 일이기에, 이곳에서의 일이 주는 무게는 어마어마하다. 일하다 보면 무뎌지긴 하지만, 현실의 내 몸과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에 항상 짓눌려있다. 더더욱 내 마음을 먼저 만져주는 게 중요한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주는 가치 하나만을 보며 하루하루를 지나 보낸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 생각하며. 아주 가끔 보람을 느끼게 되다가도 금세 무너질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나만이 느끼는 가치 하나를 보며 다시 일어선다.


내가 지금 이 일을 좋아하는 건 분명하다. 이 일이 속한 환경에 회의감을 느끼긴 하지만, 일이 힘든 건 맞지만, 그 속에 나를 기쁘게 하는 분명한 가치도 존재한다. 바쁘게 가정방문을 다니며 위로와 격려, 때로는 훈계를 하는 내 자신을 보며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내 주위 사람들이 내 일에 관심을 갖고 ‘멋지다’, ‘대단하다’는 말을 할 때, 스스로 뿌듯하다.


힘든 만큼 배울 것도 분명 많은 곳이기에, 오늘도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내 일에 대한 사랑을 다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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