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레네 Aug 02. 2021

와인을 맥주처럼 들이켜는 날

직장인에게 술이 당긴다는 것

이곳에서는 같이 일하는 동료에 의한 스트레스는 없다. 끝없는 사례관리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일 뿐.

내가 만나는 가정들 중에는 내게 매번 고마움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마치 맡겨놓은 것마냥 상당히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도 많다.


일의 특성상 감사의 표현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상식이 통하는 수준에서 대화가 되면 좋으련만.

내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낼 때에는 나도 할 말이 없다.

그 화의 대상이 왜 내가 돼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만 가득할 뿐.


경우에 따라 나도 같이 짜증을 내고 할 말을 하는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일반적인 대화가 가능한 수준에서나 가능하다.

전문의의 소견에 따라 지능이 일반인에 비해 낮다고 판정된 경우, 감정의 소모는 오롯이 나의 몫이다.

화와 짜증을 내는 상대방은 오히려 아무렇지 않다.

결국 일반적인 사고를 하는 나만 소진된다.


세상에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많구나, 연민과 동시에 다양한 감정이 든다.

그들도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을 텐데.

동정심과 동시에 화도 난다.

왜 나한테 지랄이야.





오늘은 아침부터 냉장고에 곱게 뉘어놓은 화이트 와인이 생각났다.

퇴근 후 집에 오자마자 병을 들어 올린 채 찻장 깊숙이 들어가 있던 와인잔을 꺼낸다.

쪼르르 따르는 품위는 없다.

오늘은 콸콸콸.


벌컥벌컥 들이켜는 시원한 맛은 맥주 못지않다.

오늘은 제정신으로 퇴근 후 시간을 보내기 힘들겠다. 자꾸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니까.

술이 당긴다는 것은 그날의 하루를 빨리 매듭짓고 싶다는 의미가 아닐까.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어야 본래 내 감정의 일상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타인에 의해 살짝 삐끗한 오늘의 내 마음,

너무 고생 많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생명의 무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