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아보전 상담원의 퇴근
“휴... 오늘 밤은 무사히 지나갔다.”
평일 당직을 무사히 지나 보냄을 확인하고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다행히 오늘은 응급출동이 없었고, 야간 조사 동행도 없었으며, 민원성 짙은 전화도 오지 않았다. 온 전화라고는 다른 팀장님을 찾는 여자아이의 전화 한 통뿐이었다. 지금은 야간근무로 담당 상담원과의 통화가 어려움을 안내하자 바로 수긍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의 평일 당직이 무사히 지나갔다.
평일 당직은 그나마 낫다. 주말 당직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기관 핸드폰을 붙들고 있어야 하는데, 2-3일을 보내는 만큼 어떤 전화가 들어올지 모른다. 당직자는 기관 핸드폰을 들고 퇴근을 한다. 퇴근 시 사무실 번호를 기관 핸드폰으로 착신을 돌리면, 18시 이후에도 사무실로 오는 전화를 핸드폰으로 받을 수 있다. 상담원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당직날에는 개인 약속을 잡지 않는다. 퇴근 후 친구들 혹은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네, 00아동보호전문기관입니다” 라며 급히 전화받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핸드폰 하나를 더 갖고 퇴근하는 것은 물리적인 무게로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나를 짓누른다. 언제든 야간에 응급전화가 걸려와 출동할 수 있다는 점, 블랙리스트에게서 전화가 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책임이 당직자인 나에게 있다는 점. 크고 무거운 기관 핸드폰이 유독 더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근무한 지 채 일 년이 되지 않았다. 짧은 경력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고된 당직 날이 있다.
그날은 오후 늦게 응급출동이 있었다. 나는 현장조사 동행을 붙었고, 해당 아동은 분리조치가 결정되었다. 아동을 분리조치하게 되면 임시보호시설로 인계를 해야 한다. 아동을 인계하고 분리조치 처리를 하는 과정은 모두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의 역할이다. 그렇게 조치를 취하고 아동을 임시보호시설에 데려다주고 오니 밤 10시가 되어서 퇴근을 한 것 같다. 고된 시간은 퇴근 후부터였다. 하루아침에 아이와 분리가 된 부모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전화하여 온갖 화와 원성을 표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그 감정 쓰레기통은 당직자의 몫이다. 당시 집에 들어온 나는 농축된 피로를 씻어내고자 화장실에 들어갔다. 세수를 하려는 바로 그 순간 전화가 울렸다.
‘올 것이 왔구나.’
긴장하며 받은 전화기 너머로 혀가 꼬인 듯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분리한 아동의 부모는 아니었으나, 술에 취한 남성이 전화를 한 것이었다. 속으로 화가 났다.
‘지금 눈치도 없니? 나 방금 애 한 명 분리하고 왔는데, 상관없는 사람이 생뚱맞게 술에 취해서 전화를 해?!’
현재는 상담이 어렵고 급한 응급신고만 받을 수 있다고 안내를 해도, 나도 급한 전화라며 생떼를 부리는 사람을 어찌 다뤄야 할까. 그렇게 10분 정도 이야기를 들어주고 겨우 전화를 끊었다.
“하.......”
육성으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밖에서 눈치를 보던 배우자는 나에게 괜찮은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일은 몰아서 일어난다고, 겨우 퇴근하자마자 술 취한 전화가 올 게 뭐람. 그렇게 나는 다시 마음을 도닥이고 세수를 했다. 그렇게 배우자의 품에 안겨 겨우겨우 마음을 다스리는데, 또 한 번 전화가 울렸다.
그날 분리한 아동의 가족이었다. 화가 나고 이해가 안 된다는 태도로 토로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내일 담당자와 이야기하라는 말 뿐이었다. 자신도 법계에 종사하는 사람인데 도대체 어떤 법에 근거해서 아이를 데려가느냐, 그 법 조항을 말해보라. 어떻게든 달랜 후 겨우 전화를 끊었지만, 이내 같은 사람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그렇게 한 시간 내에 전화를 세 번이나 받은 나는 귓가에 핸드폰 벨소리가 끊임없이 맴돌았다. 머릿속에서 그치질 않는 벨소리를 막을 방법이 없었던 나는 그저 눈을 감고 머리를 싸매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밤이 참 길었다.
정규 근무시간과 달리 당직은 오롯이 나 혼자 그 전화를 응대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크다. 당직 파트너가 있고 팀장님이나 지부장님에게 전화를 할 수 있지만, 결국 응대해야 하는 것은 당직자인 나의 몫이다. 유독 혼자인 것 같고 어려운 그날. 그날의 당직도 무사히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