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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밋너 Feb 04. 2017

나는 그저 외로워서 너를 선택했어

<립반윙클의 신부>, 너와 내가 맞닥뜨린 거짓과 외로움의  세계에서

※이와이 슌지 <립반윙클의 신부> 2016년작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건 너와 나의 얘기이자 나, 그리고 나…의 얘기


나는 죽는다, 아마도 그리 머지 않은 미래에.
홀로... 어쩌면 쓸쓸히.




제나처럼 촬영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있을 때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카락에 눌러붙어 굳어버린 상대의 정액을 신경질적으로 닦아내면서 투덜거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어질, 하더니 바닥과 천장이 단숨에 위치를 바꿨다. 스스로 깜짝 놀랄 정도로 엄청난 충돌음이 귓바퀴를 맴돌다가 도플러 효과처럼 멀리멀리 사라졌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샤워실 바닥에 대자로 엎드린 채 빼짝 마른 등줄기에 쏟아지는 물줄기를 하염없이 맞고 있었다. 넘어졌네, 미끄러진걸까, 갑자기 왜? 타일 위로 빗방울 같은 물방울들이 거칠게 떨어져내리고, 간간히 서로 부딪혀 한데 섞여 물줄기가 되어 흘렀다. 느릿하게 눈꺼풀을 깜빡, 깜빡, 두어번 떴다 감았다 하는 사이에 넘어지면서 부딪힌 콧등이 무척이나 아려왔다. 그 때였다. 타박상 따위보다 더 엄청난 통증과 참을 수 없는 구토감이 한 번에 밀려든 건. 나는 벌거벗은 채 샤워기의 물줄기 아래서 통증에 못이겨 바닥을 긁어댔다. 병원, 병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병원을 찾은 AV 배우 사토나카 마시로는 말기 암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암이라고요? 네, 암입니다. 그럼 저 죽나요? ...사토나카상. 죽는 거군요? 이런 지루한 대화가 오갔을 것이다. 의사는 지극히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타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사람치고는 너무나 덤덤하다. 그래, 이 사람은 이게 직업일테니. 하긴 나도 그렇게 카메라 앞에서 섹스할 때 머릿속으로는 어제 먹은 카츠동 조금 비린내가 났지,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었지. 사형 선고를 내리는 의사든, 남 앞에서 벌거벗고 섹스하는 AV 배우든, 그게 직업인 이상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야. 그래서 마시로는 의사에게 아무 배신감도 느끼지 않으려 노력하며 병원을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에 우두커니 서서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죽는구나.


나는 혼자 죽고 마는구나.


이렇게 외롭게, 쓸쓸하게, 혼자인 채 죽어버리는 건 싫어.




<립반윙클의 신부>를 보려고 몇 번이나 시도하다 시간이 맞지 않아 결국 놓쳤었는데, 오늘 무심코 보게 됐다. 나나미(쿠로키 하루)의 거짓뿐인 삶, 거창한 거짓이 아닌 지극히 소소한 거짓-보여주기 위해 찍는 음식 사진들, 그리 맛있지 않지만 SNS에 올리기 위해 호들갑스럽게 칭찬하는 감상, 사실은 그렇게 친하지 않으면서도 SNS에 업로드하며 굳이 서로를 태그하는 외로움, 그런 식의 보여주기를 위한 허세와 거짓-들에서 시작되는 영화는 줄곧 관조적인 시선을 띈다. 


SNS의 덧없음, 현대인의 외로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연약하고 외로운 세계.


영화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나나미의 삶은 얇고, 팔랑거리고, 그래서 더 허무하고 심약한 기름종이같다. 그리고 그 기름종이같은 여자의 뒷면에 비치는 건, 정말 병들어있었던 또 하나의 진주인공 마시로(Cocco)였다. 나나미의 세계도, 마시로의 세계도 모두 견고함과는 거리가 멀다. 부수려는 의지가 없었음에도 결국 부서지고 말았던 나나미의 세계나, 부서질 것이 예정된 채 곧 무너질 성냥개비 탑처럼 흔들거리던 마시로의 세계나 모두 병들어 있었다. '플래닛'은 그 병든 자들이 모여든 행성이었고, 마시로…아니, <립반윙클>님이 <캄파넬라>님을 위해 빌린 저택에서 메이드 놀이를 하며 지낸 시간들은 그들의 <피크닉>이었던 셈이다. 어떤 의미로는 지독히도 이와이스러워서 반대로 감탄하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끝나고, 스탭롤이 올라가고, '플래닛'의 가면을 쓴 나나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의 안에 문신처럼 남은 여자 마시로를 생각했다. 그래, 이 영화의 주인공은 <캄파넬라>가 아니라 <립반윙클>이었던 거다.




그래도 나는 당신을 만나서 좋았어



다시 이 글의 첫머리로 돌아간다.

죽음을 앞둔 마시로는 외로움을 생각한다. 배우가 되기 위해 고향을 떠났지만 팔리지 않는 배우로 살아온 지 벌써 10년, 그럴 듯한 영화에 얼굴을 비추지도 못하고 결국 AV 배우로 전락해 남들 앞에서 옷을 벗고 섹스를 하며 돈을 벌어 버텨내던 삶. 가족도 버리고 도쿄에 남았지만 AV 배우라는 사실이 집에 알려져 어머니에게 뼈가 부러질 정도로 두들겨 맞고도 쌍꺼풀 수술을 하고, 얼굴을 고치면서 버티고 또 버텨왔던 삶. 그 삶의 끝맺음이 이토록 외롭고 허망해서는 안된다고, 마시로는 생각한다.


친구를 구해줘.
나와 함께 죽어줄 사람을 구해줘.
…내가 외롭지 않게 죽을 수 있도록, 곁에 있어줄 너를 구해줘.


죽음을 앞둔 립반윙클의 신부를 구하는 건 아무로(아야노 고)의 몫이다. 왜냐하면 마시로는 행복해지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만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친구와 수다를 떨고, 연인의 애정에 기대고, 부모의 믿음을 그저 공짜로 받는 게 무서운 사람이었으니까. "편의점에서 물건을 살 때 점원이 비닐봉투에 그걸 담는 걸 보면… 나같은 걸 위해서 저 손가락이 저렇게 열심히 움직이는구나, 저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 나같은 걸 위해서 말야." 그렇게 말하는 마시로는 "사실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차 있어, 모든 사람이 잘 해주지. 택배 아저씨는 내가 말한 곳까지 무거운 짐을 옮겨주고, 비오는 날에는 모르는 사람이 우산을 주고 간 적도 있어. 하지만 그래선 안돼, 그렇게 쉽게 행복해지면 나는 부서져버려."라고 속삭인다. "차라리 돈을 내고 사는 게 편해." 행복에 대한 면역이 없는 마시로에게 돈은 항체와 같았고, 그래서 돈이면 무엇이든 해주는 아무로는 마시로에게 있어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혼자 살아와서 부서지지 않고 버텨내는데 전력을 다했던 마시로는, 자신과 죽음을 함께해 줄 사람을 찾는데도 돈의 힘을 빌었다. 아무로가 점찍어 밑작업을 하고 마시로가 직접 만나 테스트를 한 뒤, <인터넷 쇼핑을 하듯 간단히 너무 쉽게 손에 넣었다, 원클릭으로> 나나미를. 그리고 순조롭게 나나미의 마음을 가져온다. 그리고 부순다. 왜냐하면 나나미는, 마시로처럼 행복에 대한 면역이 없으면서도 "쉽게 행복해지면 부서져버리는" 자신을 모르는 여자였으니까. 그래서 마시로는 나나미를 원했지만, 아무리 키스하고 서로를 끌어안아도 두 사람은 연인이 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두 사람은 금이 간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이나 마찬가지여서. 그래서 두 사람은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 자기연민을 나눈 것 뿐이고, '함께 죽을 사람'을 구했던 마시로는 자기 자신과 죽을 수는 없었기에 홀로 독을 품은 소라를 쥐고 죽은 것 뿐이다. 정말이지, "바보같긴…."






<립반윙클>의 죽음은 <캄파넬라>의 재생으로 연결된다. 죽어버린 립반윙클, 또 하나의 자신 대신 새 삶을 얻은 캄파넬라는 거짓으로 가득찼던 이제까지의 삶에서 돌아선다. 죽음이 회복과 재생, 부활로 이어지는 그 지독한 삶의 써클은 자신을 찾아온 아무로와 나나미 앞에서 벌거벗고 딸의 마음이 되어보기 위해 울부짖던 마시로의 어머니에게서 시작된다. 술을 마시고 입을 씻어내고 마음을 적시고, 눈앞에서 알몸이 되어 펄쩍펄쩍 뛰고 울부짖는 마시로의 어머니와 아무로. 립반윙클의 신부, 캄파넬라는 그 앞에서 조용히 술을 마신다. 떠나간 립반윙클,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던 반윙클 부인도 그랬을까. 그렇다면 언젠가, 20년이든 30년이든 지나간 뒤에 마시로는 다시 나나미에게 돌아오는 것일까. 그럴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나미는 영화가 모두 끝난 뒤에 '플래닛'의 가면을 쓰고 세상을 바라본다. 나나미는, 마시로는, 우리는… 이런 삶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립반윙클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캄파넬라가 아닌 립반윙클이었던 거다. 행방불명되어버린 캄파넬라(은하철도의 밤)와, 행방불명되었다가 돌아온 립반윙클(립반윙클)의 이야기라서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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