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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밋너 Jul 12. 2018

그들이 가족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관하여

180711 킬롤로지 자5, 잊지 않기 위해 쓰는 기억들

 ※ 이 포스팅은 7번째 연극열전 오프닝 작품인 <킬롤로지>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손을 뻗어서 머리를 톡 치려는데 쓱 빼요. 주둥이를 내 손에 대는데 물진 않고."


다섯 번째 보는 킬롤로지, 아마도 오랜만에 봐서 더 감정이 더욱 격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수현알란의 "아빠빠빠빠"는 여전히 눈물을 쏟아내게 만들고, 승폴의 억눌렀다 터지는 소리없는 눈물은 그의 손수건뿐만 아니라 내 뺨도 흥건하게 적셨으며 율뎁의 감정선은... 오늘 율뎁의 감정선은 정말 최고였다는 것 정도다. 자신 때문에 죽어가는 메이시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에서부터 울먹이기 시작한 율뎁은 극 중 캐릭터인 데이비가 아니라, 데이비가 되어버린 장율 본인에게 화내고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감정선은 극 내에서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채 불순물처럼 떠돌다가 마지막 순간, 별을 향해 달렸어요. 결코 닿지 못할 곳을 향해... 그 대사에서 폭죽처럼 터져버렸다. 그래서 우느라고 순간순간 제대로 극을 보지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일 정도로 특별하게 좋았다. 


#1. 손을 뻗어 톡 쳐서, 나는 당신을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와중에도 두 가지 정도, 오늘 보면서 새삼 깨달아 쓰고 싶었던 부분이 있다. 극 초반부 데이비의 독백, 알란이 그에게 메이시를 주는 장면에서 데이비가 하는 대사. 고물이나 다름없는 빨간 밴을 몰고 와서 대뜸 뒷칸을 보라던 알란과 보더콜리가 많이 섞인 믹스견을 보고 감흥 없이 귀엽네~ 하던 데이비. 이들은 이 순간까지, 캐롤이라는 매개체 없이는 그 어떤 관계도 성립하지 않는 사이였다. 핏줄상 부자 관계라곤 해도 서로 남이나 다름없는 사이. 서로를 사랑해본 적이 없고 사랑한다 말해본 적도 없고, 그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고리는 아내이자 엄마인 캐롤뿐. 그래서 데이비에게 '아빠'는 엄마의 남편이고,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남들이 말하는 그 아빠라는 객관적 존재에 불과했다. 알란에게 '아들' 역시, 내 피가 흐른다고 해도 자기 손으로 길러본 적 없고 자신을 아빠라고 제대로 불러준 적도 없는(왜냐면 그는 데이비가 아빠라는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할, 18개월이 겨우 됐을 무렵 캐롤과 데이비를 떠났으니까) 아들이 한없이 데면하기만 하다. 그래서 팝콘이니 카우보이 모자니, 그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소한의 선물들로 아들에 대한 명목상의 '의무'를 해온 거고. (이 부분은 '팝콘'이나 '카우보이 모자'는 사주면서 필요했던 '코트'는 사주지 않는 알란에 대한 데이비의 묘사에서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데이비가 그를 위한 '살아있는 선물' 메이시를 받고, "손을 뻗어서 머리를 톡 치려는데 쓱 빼는" 그 순간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유기적인 '부자(父子)'의 관계로 바뀌었다. 그걸 드러내는 장면이 바로 데이비가 알란을 "아빠"라고 부르는 장면에서 이어지는, 알란의 행동을 묘사한 대사 하나다. 데이비에게 메이시는 자신의 동생, 즉 가족이었고 메이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며 하는 첫 번째 '접촉'이 바로 "손을 뻗어서 메이시의 머리를 톡 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알란은, 데이비가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자 "그 사람이 손을 뻗어 내 머릴 톡 쳤"다. 데이비가 메이시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듯-내 거야, 살아있어, 우와 근데 내 거야-, 알란 역시 데이비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장면의 연결이다. 게리 오웬 이 천재같은 자식...



#2. 아버지는 블루 칼라였죠. 화이트 칼라가 되고 싶었던

이건 전부터 갖고 있던 의혹이었는데 오늘 내 안에선, 아주 개인적으로 확신이 된 해석이다. 폴이 그 '지진아들' 얘기를 하면서 아버지가 부자가 된 배경을 설명할 때, 그는 아버지가 "화이트 칼라"였다고 얘기한다. 입고 다니는 옷은 "블루 칼라" 같았지만, 그건 "패션"같은 거라고. 그러나 과연 폴의 아버지가 정말 화이트 칼라였을까? 그 정도의 '화이트 칼라'가, 청소회사로 대성공을 거둬 백만장자가 되고 난 뒤에도 그토록 원하던 이집트 여행 한 번 가는 걸 전전긍긍한다는 건 여러모로 모순적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화이트 칼라이고 싶었던 블루 칼라라고 생각한다. 화이트 칼라에 대한 동경과 열등감을 뼛속깊이 품고 있던 블루 칼라. 그래서 그는 폴이 '뭐든지 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비싼 기숙학교'에 보내 아들을 자신 대신 똑똑한 화이트 칼라로 키우고 싶었던 거다. 


아마 폴의 아버지는 블루 칼라 중에서도 깨어있는 편이고, 남들보단 조금 더 똑똑하고 세상의 판도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력의 한계 때문에 차별받고, 블루 칼라로서 사는 것에 대해 지독한 회한을 품고 있었던 사람일 것이고. 그래서 보란 듯이 회사에 엿을 먹이고 자영업으로 성공해 벼락부자가 됐지만 그 사람의 부는 그 사람의 지적인 지위를 대변해주지 않는다. 벼락부자가 된 촌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식자층으로 가득한 화이트 칼라가 폴의 아버지를 무시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설령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해도 폴의 아버지가 피해의식을 갖지 않았을 확률은? 그래서 폴의 아버지는 스스로에게, 또 자신의 가족들에게 그토록 엄격하게 굴었던 게 아닐까. 내 똑똑한 아들 폴리가,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화이트 칼라)가 되어주길 바라는 아버지의 비뚤어진 욕망. 하지만 아들인 폴리는 슬프게도 아버지를 꼭 빼닮아서 타고난 머리로 공부를 열심히 해 명문대학생이 되기보다 돈 버는 재주로 게임을 만들고 벤처기업의 사장이 돼 돈을 쓸어담는 일에 더 재능을 발휘한다. 폴의 아버지가 바랐던 아들은, 돈은 못 벌지라도 보란듯이 '화이트 칼라'로 살아가는 아들이었을텐데. 바로 여기가 폴과 폴의 아버지가 어긋난 시점인 건 아닐까.


#2.5. 그래서 아버지는 없는 어둠에 맞서는 연대라는 허상을 쫓았네

폴의 아버지는 그래서 허무한 존재다.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 자신이 해낸 것 사이의 갭 사이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하면서도 남들 앞에선 위선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부족한 사람인 것을 들키고 싶지 않고, 언제나 선(善)과 공(公)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보이길 원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그가 어딘가의 책에서 읽어서 신념처럼 새기고 있었을 그 무의미한 구절을 지침 삼아 읊어준다.


원래 어둠은 없어. 다 빛 인거야. 하늘은 별들로 가득 차있거든. 우리가 어둡게 보이는 건 말이다. 별들이 너무 멀리 있어서 아직 우릴 찾아내지 못해서야. 하지만, 언젠간 꼭 찾게 될 거다. 그러니까 언제나 항상 하늘은 밝은 거야.


하지만 폴의 아버지가 하는 말은 모순이고 이율배반이다. 폴의 아버지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비싼 돈을 펑펑 써댄 폴을 질타하며 말한다. "연대란 건 말이다. 함께 서서 손을 맞잡고 어둠에 맞서는 거야"라고. 하지만 그 아버지는 폴이 어렸을 적 뭐라고 말했던가. "어둠이란 건 없다, 다 빛"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폴의 아버지가 "어둠에 맞서 연대하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모순적인가. 폴의 아버지는 없는 어둠에 맞서는 연대라는 허상으로 스스로를 끝내 포장하려 들었던 불쌍한 가난뱅이였던 거다. 그래서 폴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결코 닿을 수 없는 별을 향해" 페달을 밟았던 데이비처럼 별을 보지 못한다. 아버지 알란이 아들 데이비에게 준 고통처럼, 폴의 아버지도 폴에게 그런 종류의 고통을 덧없는 유산으로 남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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