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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밋너 Aug 23. 2018

<서치> 컴퓨터의 전원을 켜세요,잃어버린 딸을 찾아서

이제 <테이큰>은 안녕… <서치>가 바꿔놓은 '딸 찾기' 영화의 패러다임

간밤, 그러니까 사람들이 유독 마음이 허해진다는 그 새벽 두 시에 나는 침대에 누운 채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나의 싱글 라이프는 완벽했지만 모두가 잠든 새벽이 되면 창 밖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매미의 울음소리나 시계 초침이 똑딱대는 소리뿐인 그 적막함이 견딜 수 없이 외로운 순간이 찾아온다. 바로 오늘 새벽에도 그랬다. 그래서 나는 핸드폰을 켜고,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옛 애인의 이름을 입력했다. 흔히 듣는 얘기처럼 "자니…?"하고 문자를 보낸 것은 아니고. 대신 페이스북을 켜서 그의 이름을 검색창에 입력하는 거다. 수많은 동명이인의 릴레이 속, 프로필 사진에 나와있는 뒷모습만으로 옛 애인임을 알아보곤 클릭해서 그의 페이지로 들어갔다. 이런, 친구공개로 설정해놓은 그의 페이지엔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정보들-서울 출신, 공개로 설정해놓은 몇몇 사진들,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영화 정보 따위만이 나를 놀리듯 걸려있었다. 지금 이 순간 외롭고 심심한 내가 알고 싶은 건 너의 일상이라고, 새로운 애인을 만났다거나 아니면 결혼을 했다거나 하는 그런 것들! 속으로만 외치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의 학교, 직장, 혹은 내가 아는 친구 등의 이름을 검색하고 또 타고 타고 넘어가며 인터넷의 바다를 헤매이다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잠든 것이 새벽 네 시. 그리고 세 시간 만에 깨어 일을 한 뒤 나는 <서치>를 보러 갔다. 서두가 왜 이렇냐고? 새벽에 내가 한 저 한심스러운 모든 행동들이 영화 <서치>를 보면서 내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당신이 21세기에 살고 있고, 네트워크 안팎을 오가면서 살아가는 디지털 노마드라면 당신도 충분히 영화 <서치>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 이 포스팅은 8월 29일 개봉 예정인 영화 <서치 Searching>에 대한 아주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트로 로고 크레딧이 끝나면 영화는 갑자기 '부팅'된다. 21세기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너무 익숙할 윈도우 XP의 부팅음과 함께 시작되는 영화의 오프닝에선 말 그대로 ZIP파일처럼 압축된 한 가족의 역사가 각종 jpg 파일과 avi 파일 속에 담겨 재생된다. 아버지 데이빗 킴(존 조) 어머니 파멜라 킴(사라 손) 그리고 딸 마고 킴(미셸 라)의 계정을 오가며, 딸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아내의 죽음까지 가족이 가지고 있는 기억들을 모니터 위에 하나씩 띄우면서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연출은 단순히 기발하다는 것만 강조하기엔 너무나 서정적이고 매끄럽다. 우리는 스크린 위에 재현된 구형 노트북의 윈도우 XP 시스템 안에서 킴 가족의 기억들에 녹아든다. 엄마의 존재가 죽음에 의해 지워지고, 아버지와 딸만 남은 이 이민자 가정에게 앞으로 찾아올 일을 알든 모르든 우리는 노트북을 켠 순간(=영화가 시작된 순간) 이 가족의 삶에 스며들어 이들을 지켜보게 된다.


# 서치 안에 존재하는 우리의 두 가지 시점, 1인칭과 3인칭


삶에 스며든다. 이 말이 뜻하는 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영화 <서치>에서는 시점이라는 측면에 적용해볼 수 있다. 주의해야할 건 첫 부분이다. 노트북 화면이 '부팅'되면서 영화가 시작되고, 우리는 데이빗의 시점에서 그의 노트북 화면 속을 들여다보며  인터넷 검색창, 아이메시지 대화창, 그리고 페이스타임까지 아주 사소한 일거수 일투족을 함께 한다. 덕분에 마고가 쓰레기통을 비우지 않고 학교에 갔다는 사실, 마고가 기말고사를 망쳤다는 사실, 그리고 (딸인 마고는 모를)데이빗이 딸에게 엄마 얘기를 하는 걸 어려워한다는 사실 따위를 알게 된다. 그가 유튜브에서 '마음의 평화를 위한 4시간 짜리 교향곡'을 듣는 걸 지켜보면서 말이다. 왜냐면 우리는 데이빗의 1인칭 시점에서 그와 함께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으니까.



하지만 영화 속에서 우리의 시점은 데이빗의 1인칭에만 고정되지 않는다. 데이빗의 눈으로 모니터 너머 세상을 바라보던 우리는 CCTV와 그가 설치한 몰래 카메라 영상, 각종 방송국의 속보 중계 영상, 그리고 온라인 중계 속 영상으로 데이빗을 바라보며 3인칭의 세계로 쫓기듯 뛰쳐나온다. 딸을 찾는 아버지의 시점에서 네트워크를 뒤지다가도 방송국 속보가 뜨고 온라인 중계가 시작되면 우리는 TV 앞 소파에 앉은 시청자가 되어 남의 일처럼 마고의 실종 소식을 속보로 보며 어머, 어머 하고 제3자다운 탄식을 내뱉게 된다. 물론, 장면이 전환되고 다시 데이빗의 노트북 화면이 등장하면 우린 다시 데이빗의 눈으로 바라보는 1인칭의 세계에 초대받는다. 1인칭과 3인칭을 오고가며 영화를 보다보면 우리는 데이빗의 심정으로 단서를 쫓다가 이내 한 발 물러선 관전자로 냉정하게 사건의 결말을 유추해보고, 또 그러다가 데이빗이 되어 충격적인 반전에 입을 벌린다. 네트워크 안에서 딸을 찾는 아버지 이야기가 한순간도 답답하거나 불편하지 않게 집중도를 갖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특별한 카메라 워크 없이, 특별한 기교 없이 놀랍도록 간편하게 1인칭과 3인칭의 세계를 교차시키는 아니쉬 챠간티 감독의 마법이다.


# 컴맹이라도 괜찮아, 안드로이드 유저라도 괜찮아


챠간티 감독은 101분짜리 영화를 컴퓨터, SNS, CCTV, TV와 온라인 생중계 등 각종 네트워킹 영상으로만 구성하면서 우리가 가장 효과적으로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수많은 장치와 세세한 디테일을 녹여 넣었다.  주관과 객관을 절묘하게 섞어 버무린 영화 속에는 수많은 단서들과 쓰레기같은 가짜 정보들이 넘쳐나고 지극히 개인적인 추리의 영역은 마우스를 잘못 클릭해서 열어놓은 창을 한 번에 꺼버리듯이 모든 추론을 뒤집어버리기도 한다. 한 번도 프레임 아웃을 통해 등장인물들을 모니터 밖으로 꺼내놓지 않고 모든 장면과 상황, 그리고 서사를 네트워크 안에서 해치워버린 챠간티 감독의 솜씨는 가히 경이로울 정도다. 



영화의 소재와 스토리 라인 자체는 아주 뻔하고, 가족적이지만 그걸 풀어가는 연출의 트렌디함이 매력적인 영화다. 꼼꼼하게 설계된 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산뜻하고, 그러면서도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광케이블 안에는 인간의 따뜻함이 흐른다. <블레어 위치>가 파운드 푸티지(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로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느꼈던 충격처럼, 챠간티 감독이 <서치>를 통해 도전한 이 신선하고 놀라운 시도는 영화의 매력을 120% 끌어올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물론 자칫하면 시작도 끝도 엉성하기 짝이 없었을 지 모르는 이 시도를 매끄럽게 마무리하고 봉합한 건 챠간티 감독의 재주, 그리고 아이폰과 맥북 화면 속에서 연기하면서도 생동감을 잃지 않았던 존 조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일 테지만.


어쨌든 이 영화, 생각보다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 인터넷이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영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촘촘하게 깔린 수많은 디테일에 참을 수 없는 재미를 느낄 것이며, 애플 유저들이라면 주인공 데이빗의 능수능란한 맥북 사용에 흐뭇한 미소를 짓게될 수도 있다. 하지만 컴맹이라도 영화에 몰입해서 전체적인 스토리를 따라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고 안드로이드 유저라면 안드로이드의 UI와는 또다른 애플의 세계를 가상체험하는 재미도 느껴볼 수 있다. 대신, 영화를 보고 괜히 맥북을 사고 싶은 기분이 들 수 있으니 주의할 것. 



윈도우 XP로 부팅된 영화는 맥북의 셧다운 메시지로 마무리된다. 우리가 지켜보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은 마지막 엔딩에 도달해서야 바뀌고 영화 속 세계는 셧다운을 클릭하는 순간 전원이 꺼진 노트북처럼 모니터 너머로 사라진다. 부팅과 셧다운, 이 영화가 아니면 할 수 없을 장난이라 그저 웃고 말았다. 이런 재미와 즐거움, 짜릿함과 반전 그리고 소소한 장난거리를 안겨준 영화가 참 오랜만이라 반가웠다는 그런 얘기.


사실 이 영화는 리뷰를 쓰기가 매우 곤란한 영화였다. 왜냐하면-이런 종류의 반전 영화 대부분이 그렇긴 하지만 이 영화는 특히나 더-아무 것도 모르고 봐야 영화의 재미를 120% 즐길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다 보고 난 뒤, 이 영화에 대해 리뷰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곤 어떻게 써야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을 수 있을까 무척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 분명한 건 영화의 스타일에 대해 전해들었을 때 막연하게 품었던 우려는 101분의 시간이 모두 흐른 뒤, 한반도 열돔에 부딪혀 빗겨간 태풍들처럼 가볍게 소멸했다는 사실. 그리고 이 영화가 준 짜릿함의 여운은 지금 북상 중인 솔릭처럼 또렷하고 거대한 태풍의 눈을 가지고 있어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거대한 자극을 남겼다는 사실도.









잠깐!

여기서부터는 아주 중요한 스포일러들이 포함되어 있는 혼잣말이 있습니다.

영화를 120% 재미있게 즐기고 싶으신 분들은 백스페이스를 눌러주세요. 29일 이후에 만나요. 

그래도 난 꼭 지금 봐야겠다, 난 스포에 1도 신경쓰지 않는다 하시는 분들만 스크롤 다운입니다.







#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 이민자 가정의 삶이란. IT 엔지니어 데이빗, 겉으론 잘 지내는 듯 보여도 학교에선 겉돌고 오프라인 친구는 거의 없는 외톨이 마고. 데이빗의 동생 피터는 마리화나를 피우는 싱글남, 그의 집에서 연인 혹은 가족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이유는?

# 영화를 보면서 가장 빵 터졌던 부분은 역시 Bibber Concert(Confirmed). 극장 안의 모두가 웃고 말았다. 마고가 행방불명된 뒤 SNS에 번진 #FindMargot 해쉬태그라거나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던, 버클리에 가려고 같은 조에 초대했을 뿐이라던 아비가일의 눈물팔이 유튜브 동영상은 정말 너무 잘 알아서 씁쓸한 블랙유머였다.

# 로즈메리 빅 형사가 데이빗에게 한 얘기는 영화가 끝난 뒤 다시 생각해 보면 아주 싸패같기도 하고, 반대로 같은 부모 입장에서 아주 위악적이기도 하다. 빅은 이미 로버트가 경찰 가족들을 상대로 자기 이름을 팔아가며 사기를 쳤을 때 제 자식을 감싸느라 거짓말을 서슴없이 했던 인물인데, 사소한 사건 같지만 경찰이라는 빅의 지위를 생각하면 이건 빅의 캐릭터성 자체를 뒤집는 복선이었던 셈이다. 여기에 데이빗에게 한 그 말, "(자원했지만)배정되지 않았다면 좋았을 거"라는 말이 더해지면.

# SNS, 문자 스타일 같은 거 외엔 모니터 밖에서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기 힘들다보니 챠간티 감독이 이들 가족의 관계 구성을 위해 여기저기 세세하게 넣어둔 설정들이 또 기가 막히다. 예를 들면 세 가족의 노트북 배경화면. 아내가 죽은 슬픔을 끌어안고 살면서 딸에 대한 책임감은 가지고 있지만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서툰 아빠' 데이빗의 배경화면은 폭포가 쏟아지는 허허로운 숲 속의 자연 풍경이다.  반면 죽은 마고의 엄마 팸은 어린 시절 딸과 함께 그림그리는 모습을 (아마도 데이빗이 찍어준)사진, 그리고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고는 엄마와 함께 찍은(역시나 데이빗이 찍어줬을) 사진으로 노트북 배경화면을 설정한다. 세 가족이 함께 있는 사진이 아니라 엄마와 딸, 둘만 있는 사진. 아버지로서 데이빗의 존재가 그만큼 영향력이 적었던 거란 방증이 아닐까. 그래서 영화의 엔딩에서 마고가 엄마와 함께 있는 사진이 아니라, 학교로 복귀한 뒤 복도에서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설정하는 건 이들의 가족적 유대가 어떻게 회복되고 이어졌는지 담백하게 설명하는 장치다. 즉, 마고가 아버지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치.

# 챠간티 감독의 세세한 설정들은 처음부터 인상적으로 등장하는데, 오프닝 시퀀스에서 보여지는 윈도우 XP  속 팸의 계정 작업표시줄엔 업데이트를 하지 않은 노턴 안티 바이러스 알림창이 계속해서 깜빡인다.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지 않은 지 694일이 지났습니다, 메시지 하나로 팸이 죽은 지 694일이 지났다는 걸 보여주는 챠간티 감독의 연출, 아! 정말 너무 좋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다.



*어째서 '서치'가 키워드에 검색되지 않는 걸까...(당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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