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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밋너 Feb 28. 2023

잘 봐, 내가 드럼을 친다

#1. 우리 관계 시작은 운명적일지도 몰라, 드럼 씨.

말 그대로다. 내가 뭘 치는데, 그게 사람은 아니고 드럼이다. 정말 뜬금없이 드럼.


악기를 다루고 싶다는 열망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어린 시절에야 피아노 학원을 기본 소양처럼 다녀서, 이상하게 그 시절 평균값처럼 여겨지던 체르니 30까지 떼기는 했는데 거기서 끝이었다. 유년 시절의 피아노 교습으로 남은 건 하농, 체르니, 엘리제를 위하여… 다들 치는 뭐 그런 것들.


어쨌든 그러다가 어영부영 어른이 되고, 뭔가 악기를 배우고 싶어서 기타를 찝적거리다가(락 뮤직과 브릿팝을 듣고 자란 세대라면 누구나 이 끝내주는 악기를 욕망하지 않는가!?) 내 손가락이 심히 짧아 코드 하나 운지하기도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기타보다 작은 우쿨렐레에 도전했다가, 그마저도 F코드에서 난항을 겪으며 빠르게도 포기.


그리고 악기에 대한 꿈을 모두 접고 살다가 <온 더 비트>를 봤다.(관련글: 아드리앙에게 드럼이 온 이유 우리에게 <온 더 비트>가 온 이유무대에서 드럼을 치며 미친 연기를 쏟아내는 배우들에 압도돼서 드럼을 쳐보고 싶다, 고 막연히 생각했다. 진짜 막연히. 뭔가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많지만, 막상 배우기로 결심하는 그 첫 번째 스텝까지 도달한 적은 손에 꼽을 만큼 적은 나니까. 항상 이런 저런 핑계를 대느라 제대로 뭔가를 시도해 본 적은 거의 없는 의지박약.


그런데 이건 운명일까? 지나가는 말로 "아, 드럼 배우고 싶다. 드럼 쳐보고 싶다"며 중얼거리는 나를 동생이 툭툭 쳤다. 마침 자기 친구가 우리 동네 근처에서 드럼을 배우고 있다는 거다. 엥? 우리 동네에서? 어디 저기 홍대나, 강남역이나, 압구정이나, 뭐 이태원이라거나 하다못해 종로, 이런 데가 아니라 우리 동네에서? 


"헐, 운명이네..."


육성으로 저렇게 내뱉었던 것 같다. 진짜 운명 같네. 하필이면 지금 <온 더 비트>를 봐서 드럼에 푹 빠졌는데, 또 하필이면 지금, 하고 싶다고 마음 먹은 이 때 "자, 시작해! 이렇게까지 떠먹여주고 있잖아? 당장 시작해!"라고 등 떠밀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나는 홀린 것처럼 동생 친구에게 전달 받은 연습실(겸 레슨 교습소?)을 찾아 카톡으로 상담 문의를 남겼다. 평소의 나라면-여행을 떠날 때를 제외하고는-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의욕적인 행동이었다. 


일단 퇴근길에 상담을 먼저 받자. 센터(?)도 확인하고, 내 저주 받은 박자감각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취미로 드럼을 치면 어느 정도로 할 수 있는지 꼼꼼하게 물어보고, 그리고 에, 또, 뭘 물어봐야 하지? 상담일까지 오도방정을 떨며 기다리다가 드디어 1월의 어느 날 퇴근길, 침착하게 상담하러 센터를 방문했다.


그리고 나는 상담 15분 만에 한 달 치 레슨비를 일시불로 긁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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