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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밋너 Jun 09. 2023

이토록 선명하게 감각적인 나와 너의 축구

U-20 월드컵 준결승전이 끝나고 감상에 젖은 건 오히려 나였다.

어떤 감각들은 아주 뜻밖의 순간에 선명하게 다가온다. 막연히 느끼고 막연히 추측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실체를 가지고 내게로 덮쳐올 때 느껴지는 선뜻한 비릿함. 심지어 내가 실제로 경험하지도 않은 것들이 꼭 경험해 본 적 있는 기억들마냥, 데자뷰라도 되는 것마냥 생생하게 밀려들 때 느끼는 감정은 어쩌면 차라리 두려움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 한국과 이탈리아의 준결승전 경기가 끝난 뒤 내가 느낀 감각이 꼭 그랬다. 1-1로 팽팽히 맞서다 후반 41분 결승골을 얻어맞고, 인저리 타임 6분 동안 어떻게든 기사회생하기 위해 지칠대로 지친 다리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선수들. 라플라타 스타디움의 잔디는 엉망진창이라 여기저기가 패이고 뻣뻣하게 뒤엉켜 있는 게 중계 화면으로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으니 피로감은 두 배, 세 배였을 것이다. 마지막 코너킥, 그리고 또 한 번 올 뻔했던 마지막 득점 기회를 놓치고 이탈리아 선수들이 공을 잡았을 때 경기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물론, 중계를 지켜보고 있던 우리도 끝내 패배를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경기가 끝난 그 순간, 승자에게 주어진 환호의 특권을 만끽하는 이탈리아 선수들과 그라운드에 쓰러지듯 누워 허탈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는 대한민국 선수들의 얼굴이 교차 편집으로 송출되고 그런 선수들을 바라보는 김은중 감독의 옆모습으로 이어졌을 때 나는 중계를 끄고 말았다.


화면이 꺼진 아이패드의 새카만 액정 위로 감정이 펼쳐진다. 감정을 따라, 내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상황과 풍경이 꺼진 아이패드 액정 속 지구 반대편에서 상상의 형태로 그려진다. 그라운드 위에 한참을 맥없이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땀과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도열해 상대팀과 인사하고, 응원해준 교민들에게 깊숙히 허리 숙여 인사하고 그라운드를 걸어나와 터벅터벅 터널로 내려오는 발소리들. 경기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느껴지는 피로감에 패배의 무게까지 더해져 천근만근 무거운 다리를 끌며 복도를 지나 라커룸을 향하는 길, 아무리 마주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패배에 축 처진 선수들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괜찮아, 잘했어, 진짜 잘했어." 그렇게 다독이는 코치님들의 목소리에 꾹 참았던 설움이 북받쳐 여기저기서 희미하게 울음 삼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슬픔과는 조금 결이 다른 설움은 쉽게 전염된다. 그래도 개중에는 입술 꽉 깨물고 설움보다 분노에 더 많은 감정을 할애하는 선수들도 있고, 아직 패배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 망연하기만 한 선수들도 있다. 끝이 아니라는 느낌, 이걸로 끝이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 실제로 경기는 끝났어도, 대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장 사흘 후, 3·4위전을 위해 다시 한번 그라운드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아웃사이드로 빗맞은 공이 저 멀리 통통 굴러가버리듯이 손끝에 닿을 것만 같았던 우승이라는 목표는 저 멀리 굴러가버렸고 이 순간의 무기력한 마음을 달래기는 쉽지 않다. 지금까지 우리가 달려온 길이 우승의 길목에서 산산조각 나서 부서져내리는 걸 목도한 어린 선수들은 몸은 지치고 마음은 허무한 채로 라커룸에 이리저리 구겨지고, 시큼한 땀 냄새와 채 떨어내지 못한 잔디, 살갗에 엉겨붙은 흙덩이 따위가 뒤섞여 여전히 존재하는 그라운드의 짙은 냄새 사이로 퍼져나가는 패배의 잔향을 맡는다. 직접 들어가 본 적은 없으나 터널에서, 믹스트존에서 수도 없이 바라봤던 무수한 패배의 흔적들과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라커룸 안에서 그 패배의 텍스쳐를 경험했던 이들이 말해준 모든 조각들이 내게 그려서 보여주는 상상 속의 풍경. 그 풍경은 지나칠 정도로 실감나고, 소름끼칠 정도로 공감각적이라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코끝에는 스프링쿨러와 선수들의 땀, 그리고 경기 후 승자들이 뿌린 물에 젖은 흙과 잔디에서 피어오르는 흡사 비냄새와도 같은 그 냄새, 그리고 거기 뒤섞인 아이들의 땀과 눈물 냄새가 선명하게 피어오른다. 거친 호흡과 숨죽인 흐느낌을 듣는다. 씩씩대는 숨소리 안에 파묻힌 자신에 대한 분노와 수치와 괴로움을 느낀다. 승리 후의 선수들도 그렇지만, 패배 후의 선수들은 감정적으로 모든 면에서, 놀라울 정도로 순수해진다.


이럴 때 선수들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내 짊어지는 것은 감독의 역할이다. 경험이 적은 감독일수록, 어린 선수들을 이끄는 감독일수록 그들이 패배의 무게에 짓눌리게 하지 않기 위해 첫 마디에 공을 들인다. 여상스럽게, 오늘의 패배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무심히 툭 던지는 말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적당한 침묵으로 선수들의 감정이 어느 정도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경우도 있고, 어떨 때는 먼저 분노하거나 먼저 자책하는 경우도 있고. 그 방법과 형태의 가짓수야 수없이 많을 것이지만 분명한 건 그 어떤 감독이라도, 그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을 하려 노력한다는 것일 테다. 내가 아는 김은중 감독이라면 당연히도, 더더욱.


현장에서 일한 지난 9년 반 가까운 시간 동안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경기를 지켜보았다. 아마추어부터 프로까지,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기 대부분은 물론 해외리그나 타국 국가대표 간의 경기도 가리지 않고 정말 수도 없이. K리그를 포함해 1년에 현장에 딱 20번만 나갔다고 쳐도 9년이면 180경기 이상을 필드에서 지켜본 셈이니 당연히 실제 본 경기는 그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의 뜻은 그만큼 많은 승리를 보고, 그 승리의 수만큼 많은 패배를 봤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가끔은, 그 중에서도 이런 경기를 본 날이면 패배 후의 그들에 이토록이나 이입하여 괴로움을 간접체험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이건 내가 김은중이라는 축구선수, 코치, 감독을 좋아하고 존경하며, 그가 팀을 만들어 온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에 더 크게 증폭된 감정이겠지만. 심지어는 일을 그만 둔 뒤에도 말이다.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을 칭찬과 격려를 위한 수식어로 쓰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말을 쓰기가 몹시 싫어졌다. 결과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는 메시지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패배한 이들에게 "졌지만 너희 참 잘 싸웠어, 멋있었어"라고 말하는 게 어떤 위로가 된다는 건지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게 돼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경기 후, 김은중 감독에게 톡을 하며 잠시 망설였다. 고민과 타협 끝에 적은 말은 결국 이것이었다.


잘 싸웠고 멋있었다는 말이 마음에 크게 와닿지 않으실테지만, 감독님도 선수들도 모두 잘 싸워주셔서 감사하고 멋있는 경기였습니다. 정말로요.


메시지가 많이 올 테니 굳이 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덧붙였음에도, 평소처럼 단정하고 차분한 말투의 답이 돌아왔다. 아쉽지만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에게 그저 고맙다는 말, 잘 마무리하고 돌아가겠다는 말. 현역 시절 별명처럼 여전히 샤프한 그는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서 이렇게 '감독님' 레벨을 또 한 번 훌쩍 끌어올렸다. 선수들도 그럴 것이다. 오늘의 패배를 우적우적 씹어먹고, 조금이나마 더 강하고 단단해져서 3, 4위전까지 잘 마무리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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