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밋너 Jul 25. 2023

저, 잠깐 드럼 좀 쉴게요

#5. 이대로 영영 그만두는 건 아니니까요, 절대로! 

"쌤, 저 한 달 정도만 드럼 쉬려고요."

이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드럼 선생님에 대한 미안함이나 잠시 레슨을 쉬어야 하는-정당한 권리임에도 가끔, 학원을 그만 두겠다고 말할 때 불쑥 찾아오는-민망함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잠시 쉬는 게 아니라 영영 그만두는 게 되어버릴까봐 스스로 두려웠기 때문이다.


뭔가를 시작하고, 지속하고, 그러다 그만두는 것. '끝'이라는 목표까지 달려가기는 원래 인생의 어느 부분에서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애초에 '끝'이라는 목표가 명확하게 정해져있는 경우도 많지 않고. 하물며 취미로 배우는 드럼인 경우,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끝'이 대단히 모호할 수밖에 없다. 내가 뭐 밴드를 만들어서 '슬의생' 친구들처럼 연주회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어디 경연에 나가려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언젠가는 당연히, 드럼을 시작하고 지속하다가 그만두는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거듭 말하지만 이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게 지금은 아니다. 나는 아직 드럼을 치는 게 재미있고, 드럼으로 쳐보고 싶은 곡이 몇 개 더 있기 때문에 지금 '그만두는' 단계에 돌입할 생각은 정말이지 티끌만큼도 없었다. 그럼 뭐가 문제냐고? 


나는 어떤 상태에 한 번 돌입하면 그 상태를 지속하는 일에 꽤 편안함을 느낀다. 드럼을 치기 '시작했다', 즉 돌입했다. 드럼을 '치고 있다', 즉 지속하고 있다. 이 상태에서는 드럼을 치는 상태가 지속되는 게 마냥 편안했다. 그래서 지난 5개월 가까운 시간 동안 퇴근 후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관극 후 가슴이 두근두근한 상태로 연습실을 잡아 30분이든 2시간이든 신나게 스틱을 붙잡고 드럼을 두들길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드럼을 잠깐 쉬고 싶어요"라고 말함으로써, 내 상태는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드럼을 치는 것'이 지속되던 상황에서 '드럼을 치지 않는 것'이 지속되는 상황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 말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나는 다시 '드럼을 치지 않는' 상태를 편안하게 여기게 될 거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상태가 편안해지면, 잠시 멈췄던 것을 다시 시작하는 일은 두 배로 어려워진다. 지금까지 작심삼일로 끝냈던 모든 일들이 포기의 역사로 남게 된 메커니즘은 대체로 이와 같았다.


그래도 나는 잠시 드럼을 쉬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멈춤이 영영 멈춤으로 끝나게 될까봐 두렵긴 했지만, 도저히 한 주에 한 번 있는 레슨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회사 일이 조금 바빴던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냥 내 삶에 여유가 없었다. 덕질 때문에 꽤 많은 시간을 잡아먹고 있었고, 체력적인 한계도 찾아왔다. 여기에 외주 원고 마감 일정과 공모전 관련 일들도 밀려들어 나 자신의 머릿속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심리적 붕괴 상태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그 어느 곳에도 기분 좋게 박자를 끼워넣을 수 없었다. 드럼을 치면서 악보가 아니라, 리듬이 아니라 머릿속 어딘가에 숨은-내가 까먹었을지도 모르는-일정들을 찾아 헤매는 기분이란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길고 구차하게 드럼을 잠시 쉬게 됐다고 보고하는 것 자체가 나 스스로에 대한 깊은 불신을 방증하는 것 같아 우습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의 행동과 감정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기. 드럼을 칠 때마다 머리로 생각하느라 손발이 못 따라가는 가엾은 나를 생각하면 가끔 본능대로 밀고 나가는 게 더 낫지 않나 싶기는 하지만. 


하지만 중요한 건, 사실 이건 모든 일이 다 '지나고 난 뒤에' 쓰는 글이라는 거다. 나를 괴롭혔던 시간들, 바쁜 나날들, 힘겨운 감정들, 복잡한 일정들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정리된 뒤, 내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가끔 들여다보던 쌤이 무심히 던진 카톡 하나로. "이른달님, 드럼 치러 오셔야죠~" 아, 그럼요. 가고 말고요.


그러니까 나는 이제 '드럼을 치지 않는 것'이 지속되는 상태에서 벗어나, 다시 '드럼을 치는 것'이 지속되는 상태로 돌입할 예정이다. 8월부터 다시 시작할 드럼을 위해 오늘 연습실 예약을 비는 시간마다 채워 넣었다. 한 달만 쉬겠다던 게 거진 한 달 반에서 두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결국 이렇게 그만두고 마나?'하는 자기 불신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나는 해냈다. 정말, 잠깐 쉬고 다시 드럼에게로 돌아간다!!!(겸사겸사 브런치에도 돌아왔다!)


작가의 이전글 이토록 선명하게 감각적인 나와 너의 축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