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나를 만나다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선물이 찾아왔다

by 미정다움

2021년 장기교육을 마치고 어느 읍사무소에 산업계장으로 발령이 났던 그 시절 평범한 어느 날,

출장지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달콤한 시간을 선물 받았다.


인적이 드문 비포장길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올리게 했고,

징검다리가 놓인 작은 개울에서는 어린 시절 맡았던 물비린내가 되살아났다.

나는 차 안에서 잠시 류시화 시인이 엮은 시집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을 꺼내

시 몇 편을 읽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내가 살고 있는 가까운 곳에서 나는 꿈꾸던 여행지를 만날 수 있었다.

나의 감성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선물이었다.


그 선물이 더 달콤했던 이유는, 그 직전까지 내가 무기력의 늪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혼 후 첫 출근, 20년이 넘는 공직생활로 인해 직장에서 만나는 대부분 사람들이 우리 부부를 안다.

우린 꽤 핫한 뒷담화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잔뜩 위축되어 버렸다.


매일 반복되는 원치 않는 장소로의 출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

기계처럼 반응하고 처리해야만 하는 일들.

일상의 무게는 나의 의지를 조금씩 갉아먹었고, 슬픔이 나를 통째로 덮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나를 일으켜 세울 방법을 찾아내고 말았다.

여행을 계획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 설렘을 알렸다.

나의 작은 불씨 하나가 주변 사람들까지 기대감으로 물들일 수 있다는 것.

그것으로 나는 행복했다.


삶은 언제나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얽히고설켜 나타난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모든 것은 찰나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나’라는 존재가 지금 여기에 살아있다는 것이다.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흔들림이 결코 나를 망가뜨릴 수는 없다.


나는 나를 믿는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로 태어나서 행복하고, 그런 내가 부끄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더 좋아지고, 늙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젊음에 집착하지 않고, 늙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렇게 무던하고 여유 있게.

내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며 살 테다.

나는 나만의 인생을 즐기는 데는 1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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