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서 찾은 단단한 길
이 글은 이혼 후 미술관에서 근무하며, 홀로 서기를 연습중이던 어느 날의 기록입니다.
2022년 5월의 어느 휴일이었다.
이혼의 폭풍이 지나가고, 마침내 나만의 작은 공간에서 홀로 맞이한 첫 계절이었다.
스스로 바닥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닥은 아늑했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는 안도감이었을까.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었을까.
그 무렵 나는 나만의 경계를 다시 세우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타인의 삶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
나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에 더 이상 나의 애정 어린 직언을 낭비하지 않는 것.
내게 주어진 소중한 에너지를 오롯이 나의 삶을 다듬고 정돈하는 데 쓰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경계를 다시 세우던 날,
나는 우연히 김누리 교수님의 책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를 만났다.
책은 한국 사회의 병든 현실을 날카롭게 진단하고 있었다.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그리고 ‘일상의 파시즘’.
“한국인들은 정치의 광장에서는 부당한 국가권력에 맞춰 자기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지만, 일상의 공간에서는 공개적으로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지 못한다. 정치의 민주화는 이루었으나 일상의 민주화는 멀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았음에도,
천성이 유별나서, 불의에 분노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 불의의 개념 역시 지극히 주관적이라서, 당시에는 정의라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면 세련되지 못한 무례와 객기였던 적도 있어, 낯 뜨거운 흑역사로 기억되기도 했다.
그러나 책은 그간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고,
오히려 그것이 민주주의자의 당연한 태도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동안 조직과 사회 속에서 유난스럽고 모난 사람으로 취급받으며 상처받았던 나의 과거가,
그 문장들 속에서 비로소 위로받고 있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완벽하게 사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와 지향점은 있어야 한다.
선(善)을 위해 애쓰는 사람의 한 번의 실수에도 위선자라 매도하면서,
자신의 이익에만 충실한 사람이 현명한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
그런 세상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고등한 사고의 방식이라는 '자기 객관화'와
심리 상태나 정신의 움직임을 내면적으로 관찰하는 객관적 접근법인 '자아성찰'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바닥에서 내가 찾은, 앞으로 나아갈 단단한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