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힘드신가요? 나의 불행을 당신에게 선물합니다.

나의 불행은 약점이 되고, 나의 행복은 질투가 된다

by 미정다움

이 글은 이혼 신청서를 제출하고 장기교육을 떠나기 직전이었던, 2021년 1월의 기록이다.


1년간의 장기 교육이 결정되자, 여기저기서 축하와 시샘이 섞인 말들이 들려왔다.

모두가 힘들어하는 부서에서 혼자만 ‘탈출’하게 되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었기에,

대부분의 동료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그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나 역시 남의 인생을 온전히 알지 못한 채,

그저 좋은 기회를 얻은 누군가를 막연히 부러워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나의 불행을 떠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스스로 ‘사연 공장’이라 자조하며,

“알고 보면 제가 그리 행복하지 않습니다”라는 뉘앙스로 나의 사연을 팔았다.

소재는 차고 넘쳤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계속되는 남편의 의처증,

결국 이혼까지 결심하게 된 기구한 사연.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그야말로 최고의 먹잇감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아픈 상처를 담담히 내보이며, 나의 불행이 그들의 상대적 만족감이라도 되기를 바랐다.

괴롭지 않았다. 이 조직에서 내가 뭘 잘못하지 않아도 이상한 소문에 시달리고 공격받는 일은 이미 익숙했으니까. 나는 정면승부를 택했다.


다들 자신의 인생이 고단하고 재미없기에 남의 일에 관심이 많아진다.

소문을 술안주 삼아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며, 자신이 덜 불행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한다.

상대적 우월감말이다. 참 그거 달콤하지..

나보다 나은 사람의 흠을 찾아내고 바닥으로 끌어내려 질근질근 씹으며 웃는다.

걱정하는 척하면서도 더 자극적인 건 없는지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소문은 눈덩이처럼 부풀려진다.

인간 본성의 법칙일 뿐이다.


그 뒷담화에 대한 분노를 그만두기로 했다.

나 역시 그 대열에 서서 함께 떠들던 순간이 있었음을 인정하니, 그들의 모습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삶과 인간관계를 영혼 없이, 겉과 속 다르게 살 수 없는 나는, 차라리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나의 순수한 선의를 누군가 이용하려 한다는 것,

나에게 비수를 꽂는 사람의 말은 사실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못난 점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자.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은 결코 타인을 함부로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최선을 다하되, 그 최선의 방향은 오롯이 ‘나’를 향해야 한다. 내 인생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나의 행동은 부수적인 것일 뿐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가 바라는 대로, 내가 생각한 대로 살아나가겠다.

힘들었던 나를 위로했던 것은 언제나 자연, 여행, 음악, 책, 운동, 그리고 마음이 통하는 이들과의 수다였다. 그렇게 어울리면서 또 혼자를 즐기면서, 나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면 된다.


조금 더디고 불성실한 나조차 미워하지 않겠다.

쉴 수 있을 때 쉬고, 달릴 수 있을 때 달리며 내 인생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

삶의 속도를 내가 조절하는 사람.

감정과 기분에 끌려다니지 않으며 그것을 알아차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태도는 내가 결정한다.

나는 내 고유의 특성인 예민함과 민감성을 더는 비판하지 않을 것이다.

어른이 된 나에게 그것은 축복이자, 인생을 더 깊이 있게 살도록 만드는 선물이니까.

나는 내가 좋다. 그리고 오늘 이후 나는, 또 얼마나 성장해 나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