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편지

서로의 청춘을 기억하는 사이, 우린 참 행복하다

by 미정다움

나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세상에 그 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브런치북이 완성되었고, 무당으로서의 커밍아웃도 해야 할 때가 드디어 온 것이다.


주변 지인의 반응은 축하와 응원도 있었지만, 상당수 침묵이거나 당혹스러움이었다.

'멀리 떠나기 전에 얼굴 한번 보자'는 말은 실제 만남으로 거의 이어지지 못했고,

나는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조금씩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용기를 내어, 대학 시절 뜨거운 청춘을 함께 했던 친구에게 나의 소식을 전했다.


어느 날, 그 친구에게서 편지가 한통 도착했다.

미정아, 브런치 글 잘 읽었어~
아직 다 읽진 못 했고 좀 남았지만, 다 읽고 소감을 전하면 흐지부지 늦을 거 같아서 미리 전해본다
작가가 된 걸 축하해~~^^ 서점에도 나오면 좋겠다~
읽는 동안 이걸 재밌다고 해야 하나
글 자체가 주는 흡입력, 울림은 한 편씩 읽을 때마다 집중시키고
작가의 감정을 상상하게 되니 재밌었다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내 친구의 삶에 대해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편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네
읽으면서 계속 대학시절 미정이 모습을 생각해 봤어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떠오르는데..
하여튼 내 기억 속엔 여리고 정 많고 때로는 눈물 많고
그래도 대부분 밝고 장난 잘 받아주고 잘 웃던,
예쁘고 똑똑한 건 누구나 다 아는 거니까. 하여간 그런 미정이가 떠오른다.
감정이 예민해서 소위 기분파 같은 느낌이 들곤 했는데 20대 초반 그 시절엔 다 그랬겠지
지금 돌이켜보면 젊고 빛나기만 해도 좋았을 시절이었는데 왜 그렇게 힘들었나 싶다
물론 지금도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힘들고 삶 자체가 고통이 수반된..
그래서 '태어난 인간에겐 연민이 느껴진다'라던 어떤 작가의 말이 떠오르고
나의 아저씨 이선균 대사 중에서도 있었던 걸로 기억해
삶의 큰 갈림길에서 연금술사처럼 자아를 찾아 떠나는 용기 있는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지고
지금까지 힘들었을 너의 상처, 너의 응원을 받을 누군가의 상처들 모두 잘 치유되길 진심으로 바라
대학 때 네가 은희경의 '새의 선물' 추천해 준 적 있지?
주인공 진희 생각나? 어린아이였지만 일찍 어른이 된 진희가 진짜 어른이 돼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던 부분이 생각나는데, 남에게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 로 자아를 분리시키면서 보여지는 나는 비난받을 수도 있겠지만 진짜 나는 사람들 눈에 노출되지 않고 나 자신을 그대로 온전히 지킬 수 있다는 글이 떠올라서..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작가로서의 김미정을 잘 지켜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부모님이 준 상처도 많지만 타고난 장점도 많아서 앞으로도 잘해나갈 수 있을 거 같아
특히나 작가로서의 활약이 기대된다
네가 있는 곳, 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어찌 보면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나처럼 얽매인 삶보다는 새롭게 도전하는 삶, 전혀 다른 삶은 작가의 자산이 될 거라 생각해
아무튼 새로운 도전들 응원할게
친구로서 힘들었던 너의 시간들이 맘 아프긴 하지만 작가로서 글은 너무 멋지다~~~화이팅!!^^




친구의 편지를 읽고, 나는 '친구'라는 단어의 의미를 곱씹어 보았다. 사전은 친구를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라 정의한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는 거의 연락이 끊겼고, 25년간의 긴 직장생활 동안에도 이상하게 동갑내기 친구는 거의 없었다. 나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10년에 한 번을 만나도 늘 유쾌하고 편안한 이들은, 대학 친구들이었다.

대학 때는 참 지지고 볶으며 미묘한 심리전도 했었던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그녀들과의 만남은 직장생활 내내 느꼈던 친구에 대한 갈증을 단번에 해소시켜 주었다. ‘아, 이렇게 나와 결이 비슷한 친구가 내게도 있었지.’


그 친구 중 한 명이, 서로의 청춘을 공유하는 그녀가 내게 보내온 이 편지는 그래서 더 큰 위로가 되었다.

글의 여운에 나는 한동안 멍하게 멈춰버렸고, 과거의 시간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적셨다.

나의 아름다웠던 청춘을 기억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날 만큼 행복했다.

물론 나도 그녀의 그 시절을 기억한다. 우린 참 행복한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놀랐던 건, 친구가 내가 한때 좋아했던 은희경 작가의『새의 선물』을 기억해 줬다는 사실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를 분리해서 나 자신을 지키는 것.

그것은 어쩌면 내가 평생에 걸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해왔던 생존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잊지 않고 기억해서 나를 걱정해 주는 친구의 따스함이 깊이 다가왔다.

친구는 단순히 내 글을 읽어준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읽어준 것만 같았다.


나는 친구에게 보냈던 답장을,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전하고 싶다.


친구야, 너의 글이 내게 참 많은 여운을 남겨서 바로 답장을 못했어. 일단 정말 고마워.
나의 청춘을 기억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날 만큼 행복하다.
물론 나도 너의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지. 우린 참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치.
그 시절 너는 지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고,
많은 고민의 시간 속에서 치열하게 청춘을 버텨냈던 것 기억이 나.
특히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갓 스무 살의 너는 얼마나 힘들었니?
그때의 나에게 아버지의 존재란 그저 사라지기만을 바랐던,
마음이 고장 났던 나였어서 가까운 이의 죽음에 대한 공감도 할 수 없었던 것 같아.
지금 와서 보니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힘들어했을 너를 위로하거나 배려하지 못했던 그때의 내가,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해.
사실 난, 너의 아버지라는 존재가 참 부러웠어. 이제는 말할 수 있네.
친구야, 힘들었던 내 시간을 알아주고 마음 아파하며 공감해 줘서 정말 고마워.
작가로서 내 글을 인정해 준 건, 똑똑한 내 친구라는 걸 알기에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
그리고 어쩌면 이해하기 힘들 수 있는 내 처지를, 편견 없이 받아들여주고,
침묵이 아닌 이런 멋진 글로 답해주다니.. 정말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야.
네 말처럼 나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이 글을 쓰기 위한 자산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덕분에 용기 내서, 이 길 계속 가볼게.
서로의 청춘을 기억하고, 서로의 아픔을 짐작하며,
새로운 길을 응원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내가 그 모든 시간을 통과해 온 이유이자,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심규선의 2023 콘서트를 담은 유튜브 영상에서 그녀는 말한다.
"사는데 무슨 의미가 있죠?"
"누구나, 어떤 강한 사람도, 아무리 약한 사람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구에게나 단 한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넌 살아갈 거야. 마지막에, 마지막까지라고.. 말해주는 단 한 사람만요.
그 한 사람만 있으면 사람은 절대로 잘못되지 않아요."

인생의 굽이굽이 속에서 세상과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끼기도 했지만,
결국 나는 그 한 사람의 힘을 믿게 되었다.

또한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 한 사람의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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