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브런치북, 그 후의 기록
첫 번째 브런치북의 마지막 글을 올리고 나서, 나는 몸살을 앓았고 이틀을 내리 울었다. 어쩌면 그 육체의 고통과 눈물은, 오랜 시간 나를 기다려주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지기(知己)인지도 모른다. 신당을 빨리 마무리 지으라는 조상님들의 답답한 마음이 내는 아우성. 나는 이제 막 일을 시작하려는 애동무당이니까.
브런치 작가로 선정된 후 첫 글을 올린지 16일만에 드디어, '내가 꿈꿔왔던 첫 번째 브런치북'의 마지막 글을 올리고 말았다. 과거의 기록에 약간의 주석을 단 글이 많아서 예상보다 속도를 빠르게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30편의 글만 완성하자는 목표로 많게는 하루에 3개씩을 올리기도 했지만, 뭐든 투머치한 나는 결국 목표를 초과한 33개의 글을 완성시켰다.
모든 것을 쏟아냈다는 후련함과, 이제 정말 모든 것이 끝났다는 거대한 공허함이 뒤섞인,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이 뒤따랐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미처 몰랐던 슬픔이, 마침표를 찍고 나서야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러던 중, 알림이 울렸다. 미술관 시절, 내가 참 아꼈던 동료가 눌러준 ‘좋아요’였다. 「공무원, 무당이 되다」라는, 어쩌면 가장 이해하기 힘들 수 있는 글에 찍힌 그 작은 하트 하나. 그걸 보는 순간, 둑이 무너지듯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좋아요’는 단순한 클릭이 아니었다. 그것은 24년간의 ‘공무원 김미정’에게 보내는 마지막 작별 인사였고,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는 압니다”라고 말해주는 따뜻한 위로였다.
내가 사랑했던 그 세계, 그곳의 좋은 사람들, 그들과의 관계가 정말로 끝났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퇴직 후 내가 한 번 더 무너져 내렸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직업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만났던 소중한 사람들, 함께 울고 웃었던 인연들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다는 것을. 그 ‘좋아요’는 바로 그 상실의 마지막 확인 도장이었다. 내가 사랑한 무언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정말 슬프고 마음 아픈 일이니까. 나는 비로소, 내 삶의 가장 큰 일부와 진짜 이별을 하고 있었다. 상실과 애도. 그 거대한 과정의 한가운데에 내가 서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모든 것을 쏟아내고 나니 닫혀 있던 감각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책을 읽는 것이 힘들었고, 음악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감성이 죽어버린 듯 했고, 머리가 꽉 막혀 어떤 활자도 나의 감각으로 온전히 소화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나는, 다시 시를 읽고 있었다. 정호승 시인의 시를 읽으며 함께 울고,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으며 떠나온 것들을 애틋하게 돌아보았다. 멈춰 있던 나의 감각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콘서트 티켓팅도 도전해 보았다. 오랫동안 좋아했던 가수, 인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만 같은 싱어송라이터 심규선의 콘서트, 물론 장렬하게 실패했다.
나는 이제 안다. 이 길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만 하는 길이라는 것을. 그 길 위에서 나의 영혼, 나의 감정, 나의 진심을 고스란히 온전히 느끼며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또한 앞으로 일을 하기 시작하면,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 속에서도 분명히 공허하고 허무한 공백의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을 고통으로만 여기지 않고,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시작했다. 밝음이 커질수록 그 그림자도 더 커진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무게를 버텨내는 법을 배울 것이다.
지난한 삶 속에서 살아남고자, 꾸준히 찾아냈던 나만의 취향들이 공백의 시간을 함께 버텨줄 것이라 믿는다. 최소한, 나를 파괴하는 부정적 감정에만 매몰되어 허우적대지는 않겠다는 나의 결심. 그것이 그 모든 눈물 끝에 내가 얻은, 가장 단단한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