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배설, 그 후

거울 앞에서 마주한 나

by 미정다움

브런치북을 완성한 뒤 며칠간의 눈물이 그치고, 닫혔던 감각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던 때였다. 멈춰있던 나의 시간이 다시 흐르는 듯한, 위태롭지만 고요한 평온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평온도 잠시, 또 다른 파도가 나를 덮쳤다. 나의 퇴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과거 직장 동료들의 소식을 다른 동료를 통해 전해 들었다.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영전하며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가고 있었다. 그 순간, 작년 여름의 기억이 비수처럼 날아와 심장에 박혔다. 생소했던 국책 연구 사업. 땡볕 아래 허허벌판에 천막을 치고, 국책 연구 사업의 실증지를 따내기 위해 땀 흘리며 뛰어다니던 나의 모습. 그 모든 헌신에 결국 돌아온 것은 퇴직이라는 결과. 나 홀로 모든 것을 잃고 떠나야 했던 기억 앞에서, 나는 다시 분노에 휩싸였다.


그 분노는 2023년의 또 다른 상처를 불러왔다. 국가기관에 파견 근무를 갔을 때 겪었던 갑질 사건. 나는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고, 꽤 오래 병가를 내야 했다. 고통 속에서 매일 밤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


그 고통의 한가운데서, 누군가는 내게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소리치고 싶었다. 이것은 피해의식이 아니라, 내가 진짜 '피해자'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는 침묵했다. 더 아팠던 것은, 그 사람이 마치 소외된 나를 감싸준 선인(善人)인 양 생색을 냈을 때, 그리고 내가 그 앞에서 ‘감사하다’고 말해야만 했을 때였다.


결국 나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상담까지 받았다. 상담사는 말했다. “참으시면 병이 됩니다.” 그리고 퇴직 후 몇 년이 지나도 그 고통이 잊히지 않아 마침내 갑질 신고를 한 어느 공무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결심했다. 세상의 모든 갑질 가해자들이 알아야 한다고. 피해자의 고통은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사라지지 않으며, 당신들이 발 뻗고 자는 밤에도 누군가는 악몽에 시달린다는 것을. 언젠가 그 끔찍했던 시간이 반드시 당신들을 찾아갈 것이니, 부디 불안에 떨며 고통받으라고.


하지만 나는, 나의 소속기관이 아니었던 그 혼란스러운 조직의 다른 직원들을 위해 조용히 삭히기로 결심했다. 안 그래도 힘든 그들이 나로 인해 조직에 대한 불신과 혼란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일을 겪고 나의 소속기관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결심했다. ‘그래, 도저히 참을 수 없으면 이제는 퇴직을 하자.’


이 모든 일들이 공무원으로서의 나를 내려놓기 위한 빌드업 과정이었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나는 여전히 과거의 기억 하나로 분노하고 슬퍼한다. 이것은 고통받았던 인간으로서의 나를 떠나보내는 애도의 과정 중 하나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 글이 후회로, 훗날 나의 발목을 잡을 고통으로 남지 않을까.. 사실 마음 한편에는 두려움이 있다.


그런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더 선명하게 새겨진 주홍글씨였다. 나는 ‘아이들을 버리고 집 나간 여자’가 되어 있었다. 20년을 근무했던 이전 기관에는 나를 알아주는 오랜 인연들이 있었지만, 새로 옮긴 이곳에서 나는 그저 ‘낙인찍힌 사람’ 일뿐이었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재단은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하고 애쓰며 살아왔는지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던 그 사람들이, 오히려 소문의 발원지가 되어 나를 나쁘게 말하고 다녔다는 사실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아이들을 위해서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아이들과 핏줄로 연결된, 아이들을 아끼는 진짜 가족이라면 그 아이들의 엄마라는 존재인, 나에 대해서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나의 힘든 시간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이들의 배신 앞에서, 나는 일어설 힘을 잃었다.


바로 그때, 나는 가장 무서운 진실과 마주했다. 한때 아무리 큰 고통을 통과하며 강해졌다고 믿었더라도, 과거의 상처와 닮아있는 아주 작은 사건 하나가, 오히려 더 쉽게 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 과거의 나는 그저 이겨내느라, 싸우느라 바빠 몰랐던 것들이, 모든 것을 통과해 온 지금의 나에게는 더 아프고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너무 쉽게 무너져내리는 나를, 마음뿐만 아니라 육체마저 무너져 내린 나를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고만 싶었던 것이다.

아마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저자 백세희가, 설리가, 최진실이, 구하라가... 그렇게 스러져갔던 것도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깨달음 앞에서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혹시 지금, 당신도 이와 같은 절망의 끝에 서 있나요. 세상에 홀로 버려진 기분에 모든 것을 놓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발, 당신을 포기하지 마세요. 당신이 지금 느끼는 그 지독한 고통은, 당신이 틀렸거나 약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영혼이, "너무 아프다"고, "살고 싶다"고 보내는 가장 절박한 신호입니다. 그 소리를 들어주세요. 괜찮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그 눈물은 댐의 수문을 연 것과 같았다. 그 모든 기억이 한꺼번에 나를 덮쳤다. 뭘 봐도 화가 났다. 세상 모든 것이 삐뚤어져 보이는 나의 상태. 그리고 그 모습을 발견한 나 자신이 가장 괴로웠다. ‘나는 왜 이렇게 삐뚤어졌을까.’ 그때 깨달았다. 그것은 삐뚤어진 것이 아니었다. 갑질의 피해자로서, 부당한 사건의 희생자로서 상처받았던 내 안의 아이가, "너무 아프다! 억울하다!"고 온몸으로 소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알아차리고 나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그 깊숙이 묻어두었던 상처를 회피하고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보듬어주며 살아갈 것이다. 눈물을 쓱 닦고 씨익 웃었다. 알아차렸다는 것은 절반의 성공이니까. 나는 이제 더 이상 당하고 짓밟히는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다. 기꺼이 ‘발칙한 년’이 될 것이다. 세상의 다양한 그림들의 이면볼 수 있지만, 얕은 술수로 약자를 밟지 않고 그들을 돕는 사람. 당당하게, 멋지게.


그렇게 한참을 울고, 분노하고, 다짐하고, 마침내 지쳐 거울 앞에 섰을 때였다. 문득, 거울 속 내 얼굴이 너무나 고와 보였다. 충분히 배설해서 그런가. 감정의 배설. 그 모든 눈물과 분노, 아픔과 깨달음을 쏟아낸 자리에, 마침내 진짜 내 얼굴이 드러난 기분이었다.


나는 안다. 이 평온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내 삶은 또다시 예측할 수 없는 폭풍 속으로 휘몰아쳐 들어갈 것이다. 인생의 모순은 여전하고, 나는 또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이제, 최소한 그것들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 폭풍 속에서도, 나를 지켜낼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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