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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문집

지금의 조건에서 살아가는 힘

24년 12월 30일 감사노트

by 이리재

두 아이와 투닥거리며 같이 공부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아이가 불만스럽게 말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도 화내지 않고 이야기할 만큼 애쓴 나에게 고맙습니다.

적어도 아이에게 감정을 폭발하는 대로 쏟아붓지 않는 하루였어서 다행입니다.


졸업식을 앞둔 둘째에게 졸업 선물로 받고 싶은 걸 말해보라 했더니

배시시 웃으며 아무것도 필요 없다, 다 같이 졸업식 후 맛있는 밥을 먹으러 가면 좋겠다 합니다.

세상이 알아주는 브랜드, 친구들이 자랑하는 물건 가격으로 존재의 근거를 삼지 않는 아이에게 고맙습니다.

앞으로 사춘기를 겪으며 예측불가한 상황을 겪겠지요.

남의 부모와 내 부모를 비교하고

다른 집의 해외여행과 우리 집의 해외여행 횟수를 비교하고

용돈은 얼마를 받는지, 과외는 얼마짜리를 하는지 비교하게 될 겁니다.

그럴 때마다 쓰린 마음, 좋은 마음, 부러운 마음, 하고 싶은 마음

어떤 마음이든 드러내고 표현하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봅니다.

어떤 마음이든 내 앞에 나타난 아이 마음 받아들이고

기쁘게 때로는 씁쓸하게 직면하는 부모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정확히 알고,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비전과 미래를 그리는 한편 사람답게 함께 사는 힘을 길러 가겠습니다.


친정 엄마가 살아계셔서 외손주 졸업식에 오실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나의 외할머니가 그리 하셨듯,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폭은

아직 미숙한 엄마인 제가 펼칠 수 없는 경지이기에

할머니의 오롯한 사랑받을 수 있는 내일을 기대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곁지기가 되어 함께 살아가는 남편이 바쁜 회사 일정 중에 아이 졸업식에 올 수 있어 기쁩니다.

세상에 당연한 순간이란 없습니다.

밤새 안녕이란 말이 이토록 절실한 요즘

그래도 내일 나의 엄마, 나의 남편, 나의 아이들과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을 축하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이 밤이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평안하게 꿈 없는 밤 되길.

잘 자요, 모든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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