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은 함께 먹는 편이 좋다
우리 인생 첫 빵 이야기
향긋하고 다사로우며 포근하고 쫄깃하다. 때로는 화사한 정원의 꽃들을 닮은 색채로 사르르 녹아내리며 혀를 감싸는 크리미 한 질감이 살 맛을 선사한다. 그 풍성하고 다채로우며 질서 정연하게 우리를 기다리는 세상. 바로 빵이다.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빵을 즐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체지방을 태우며 빵에 예민한 관리형이라 안 먹어! 를 선언하는 상황이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그 케이스는 아니다. 세상에 태어나 가동한 지 연식이 제법 되어가는 몸과 밀가루는 베스트 소화가능템에서 제외하자는 소화기의 신호가 알려준다. 그래도 빵을 참 좋아하고 한때 온갖 빵을 구워내던 사람으로 살았던 시간이 있기에 빵과의 마지막 시간을 빵스럽게 남겨두고 싶다. 전지구적으로 탄소중립을 외치는 시대에 밀가루와 버터의 자궁에서 탄생하는 빵은 탄소로운 존재이지만, 혈당을 급격히 올리며 남은 칼로리를 지방으로 전환시키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면이 있기는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맥주를 마시기 위해 달린다는 마음을 본받아 빵을 먹기 위해 운동을 하고 각종 빵 가운데 심사숙고한 후 누려보려 한다. 게다가 새로운 빵친구가 생길 예정이니.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에서부터 시작된 빵의 역사는 마지막 호모 사피엔스가 끌어안은 품에서야 끝날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빵을 아끼고 사랑하고 즐긴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인 요르단에서 발견된 빵 부스러기는 야생 곡물을 빻아 구워서 먹던 사람들의 하루를 짐작하게 한다. 사람들은 농사를 짓기 전부터 거두어 빻고 갈고 반죽하여 구웠다. 이후 사람들의 지혜가 더해지며 '발효'가 더해지고 플랫 브레드에서 진화한 빵빵한 각종 빵들이 일상에 자리 잡게 된다.
예수님은 빵을 통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이셨다.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생선으로 기적을 행하여 나눔과 사랑의 마음으로 많은 이들을 먹이셨다는 내용이다. 아마 그 떡은 빵이었을 것이다. 빵의 재료인 밀의 원산지로 꼽히는 트랜스 코카서스 지방의 납작한 '라바시'도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아름다운 공동체성이 담긴 음식이었기에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뿌리고 거두어 빻고 갈아 반죽하여 굽고 나누는 그 모든 과정에는 사람이 담겨 있다. 시간과 정성, 삶을 함께 구운 빵은 그렇기에 공유이자 소통의 매개체였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빵은 다섯 살 무렵의 초코파이이다. 당시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어려움을 겪던 우리 집은 나를 외가에 맡겨두셨다고 한다. 엄마는 집안의 장녀로 상당히 젊은 나이에 나를 낳으셨기에 나는 열 살에서 열 서너 살 많은 외삼촌, 이모들 사이에서 사랑을 듬뿍 받았다. 언니이자 누이를 절반쯤 닮은 어린 생명체를 돌보고 아껴준 청소년들의 열정적 돌봄에 심심할 틈이 없었다. 여름에는 소쿠리를 작은 막대에 기대어 실에 묶고 쌀을 뿌려 참새를 잡고, 겨울에는 눈 벽돌로 이글루를 짓고 그 안에서 밥을 먹었다. 외가의 3층 양옥집 옥상은 내게 무릉도원이기도 겨울왕국이기도 했다.
감사하게도 나는 내 부모의 경제적 어려움, 어른들의 신산한 경제 상황 한파에서 안전했다. 이따금 엄마가 보고 싶어 슬펐던 적은 없는지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보려 해도 젖먹이 때부터 키워주신 외할머니 품이 워낙 깊고 다사로워 딱히 주인공 되기에 성공한 적이 없다. 그랬던 나는 다섯 살 생일에 이모삼촌들이 층층이 높게 쌓아 올린 초코파이에 떠먹는 딸기 요구르트로 멋을 낸 케이크 앞에서 촛불을 불었다. 어두운 방안 바알갛게 빛나는 작고 어린 초 다섯 개의 흔들리는 불빛 속에 외가 식구들의 둥그스름하고 따스한 표정과 나를 향한 눈빛은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언제나 살아나 일렁인다. 그때 초코파이를 쌓아 올려준 가족들의 사랑은 나를 이루었고 나는 그들의 언어와 온기 속에 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삶에 요즘 가장 맛있었던 건 뭐였을까. 누구와 먹을 때 편안하고 즐거웠을까. 너무나 먹고 싶은 것을 참아야만 했다면 무엇을 왜 참았을까. 먹는 것은 곧 우리 삶이기에 나는 당신이 맛있고 즐겁게 먹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삶의 무엇이든 공통점을 찾아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려는 마음을 나누는 일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소중하다. 김장도 빵 굽는 일도 점점 줄어드는 현대 사회에서도 빵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행복한 순간이 늘어난다면 그걸로 족하다.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고 나누며 이야기하는 일, 그것이 '행복의 기원'이다.
혹시 당장 응급실로 달려가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냥 가지 마시고 라이킷 대신 댓글로 알려주시라, 당신 인생의 첫 빵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먹었던 무엇인지. 내가 그 빵의 이야기를 듣고 갓 구운 마음의 빵이 될 글을 써서 당신에게 건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