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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mmaPD Nov 19. 2024

바게트를 뜯어본 적 있는가

유럽 거지의 1일 1 빵 이야기    

 "넌 잠 안 오고 무서울 때 무슨 생각해?"

 "난 빵 고르는 상상 해. 빵 냄새를 맡으며 예쁜 빵들을 고르는 행복한 생각."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세는 대신, 슈크림빵, 곰보빵, 초코소라빵... 그렇게 빵을 세었다. 엄마가 빵은 안 사주고 밥만 해줘서였을까. 빵을 먹은 기억보다는 빵을 세었던 밤들이 더 생생하다.


 나의 첫사랑 빵은 무엇일까? 밥 밖에 못하던 엄마가 내 생일날, 프라이팬에 신문지 깔고 계란반죽 부어 만들어주셨던 어설픈 카스텔라가 떠오른다. 안양 중앙시장에서 줄 서서 먹었던 달인 아저씨의 꽈배기와 생도넛도 그립다. 그래도 내 혀에 가장 오래 각인된 아련한 첫사랑은 바게트리라.     



 

 스물다섯, 넥슨이라는 게임 스타트업 회사에 파격적 대우를 받고 대학생 신분으로 취업을 했었는데, 그 좋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영국 연수길에 올랐다. 따박따박 월급 모아 좋은 데 시집갈 거라 믿었던 딸이 그동안 모은 돈을 가지고 튀겠단다. 연년생 등록금 대느라 뼈 빠지게 고생하고, 이제 숨 좀 쉬나 하셨을 텐데, 나의 출국이 얼마나 황당하고 쓰라리셨을까.


 "엄마 죄송해요. 생활비는 제가 벌어서 쓸게요. “



 인생이 고정화되기 전에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한 번 알아보고 싶었다. 세계를 배우고 싶었고, 유랑을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완전한 독립을 해보고 싶었다. 영국으로 연수지를 정했던 건 학생비자로도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막연하게 동경했던 마을 캠브리지로 향했고, 모아둔 돈은 왕복 비행기값과 단칸방, 어학 프로그램 등록에 금세 바닥났다. 운 좋게 스페인 친구들을 사귀었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캠브리지 펌브로크 대학교에서 밥 퍼주는 여자가 되었다. 새벽부터 일하고 공부하고, 일하고 공부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정말 열심히 살았다. 2주마다 파운드화가 통장에 찍혔는데, 한 푼도 헛되이 쓸 수 없었다. 내 여행비. 지금은 밥 퍼주는 여자지만, 9개월 후 나는 유럽을 누빌 것이다.    


 그 당시 유럽에서 6개월 이상 체류한 학생은 유럽을 여러 개의 존으로 묶어 대부분의 기차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환상적인 티켓을 살 수 있었다. 유럽 친구들의 정보력으로 유레일 학생 패스보다 훨씬 저렴하게 서유럽, 동유럽, 북으로는 덴마크까지 횡단할 수 있는 패스를 거머쥘 수 있었다. 프랑스, 아탈리아, 스위스, 슬로베니아, 체코, 헝가리... 여행 계획은 원대해졌고, 2006년 독일 월드컵이라는 인생 최대의 이벤트도 제대로 누려볼 욕망이 이글이글.

 


 나의 베이스캠프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였다. 유럽의 심장처럼 지도상 한가운데 있는 도시였고, 동서로 정말 많은 기차들을 이용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차역 가까이 유럽에서 가장 저렴한 유스호스텔이 있었다. 서쪽으로 스위스를, 북쪽으로 독일을, 동쪽으로 프라하, 부다페스트 등을 떠돌아다니다가 잠은 잘츠로 돌아와 자곤 했는데, 먼 거리를 여행할 때면 기차에서도 자고, 기차역에서도 잤다. 노숙을? 맞다. 막차와 첫차사이의 대기 시간을 대합실 벤치에서 보내며 숙박비를 아끼기도 했다. 침낭까지 야무지게 싸서 배낭하나 메고 돌아다니는 동양여자는 어떻게 비쳤을까.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기안 84를 마주하면서 그때의 내가 거울 보듯 떠올랐는데, 누나는 기이한 81였단다.

 

 여행의 재미는 먹는 거라지만, 아껴야 했다. 큰 바게트를 하나 사서 3 등분한다. 걷고 또 걸으며 아침, 점심, 저녁을 뜯는다. 1일 1 바게트. 그렇게 해야 미술관에라도 한번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가끔 기차역에서 파는 잠봉뵈르 샌드위치 같은 사치도 누렸었지만, 그 또한 담백한 바게트로 만든 것이었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 먹고 싶은 유일한 음식이 그 역사 노상에서 파는 샌드위치였는데, 남편은 구해오질 못했다. 어떻게 구하리. 나만 아는 맛일 텐데. 바게트로 연명하는 1유로 인생이었지만, 측은하게 보지는 말아 주시길. 엥겔지수를 낮춰 월드컵을 직관했을 뿐. 그리고 진짜 맛있었다니깐.




 동네에 맛있는 빵집이 많지만, 바게트를 만들어 파는 곳은 찾기가 어렵다. 세상의 모든 빵을 모아 둔 것 같은 대형빵집도 최근 바게트 판매를 중단했고, 조리기능장의 집이라며 빵부심을 자랑하는 신생빵집도 바게트는 안 판단다. 품이 많이 드는데, 비싸게 팔기는 어려운 서민 빵이라서 그럴 것이다. 다행이다. 파리바게트가 파리’바게트'라서. 상호명이 바게트니까 영원히 바게트를 팔아주겠지. 3,600원의 행복. 더 이상 주머니가 가난하지 않지만, 나는 오늘도 바게트 딱 하나만 샀다. 그때처럼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썰어준다는 것도 마다했다.


 오전에 뜯고, 퇴고하는 밤, 마저 뜯는다. 젊은 날의 패기가 선명히 베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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