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켜 자던 밤의 추억

29살, 주특기는 추억팔이입니다.

by 김아릿


나는 네 쌍둥이 혹은 네 자매의 장녀로 종종 오해를 받았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데, 이 네 명은 '우리 엄마 딸 둘'과 '이모네 딸 둘'을 말한다. 나이대도, 생김새도, 성격과 말투도 비슷한 사촌지간 여자애들이 우르르 몰려다녔으니 사람들이 신기해할 만도 했다. 여름방학 때면 사촌동생들은 우리 집에서 살기도 했고, 평소에도 자주 놀러 왔다가곤 했다.


함께 잘 때면 네 명이 줄줄이 누워 이불을 나누어 덮었다. 쪼꼬미 시절에는 킹 사이즈 침대에 가로로 눕기도 했고, 더 커서는 바닥에 대충 큰 요를 깔고 자기도 했다. MT나 수련회를 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잠자려고 불을 껐을 때부터가 가장 재미있는 법이다. "자?" 한 마디에 시작된 수다에 까르르거리고, 서로에게 팔과 다리를 올리고, 이불을 뺏고 빼앗기며 함께 뒤엉켜 밤을 보냈다.




설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우리 집으로 모였다. 어릴 때 모여 놀던 풍경에서 변한 건 크게 없다. 눈을 뜨자마자부터 잠에 들 때까지 쉴 새 없이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신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성묘를 하러 갈 때 아빠 차 뒷좌석을 꽉꽉 채워서 앉는 대신에 내가 운전하는 차에 한 좌석씩 편하게 앉아서 간다는 점, 서로 주고받는 선물의 가격이 높아졌다는 점, 저녁에 술 한 잔씩 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


하나 더 있다.


"언니 땜에 잠 제대로 못 잤어!"


설날 아침 댓바람부터 막내 사촌동생한테 잔소리를 들었다. 전날 같은 침대를 썼는데 내가 대각선으로 잤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배려한답시고 구석에 처박혀 있었는데 머리만 그랬지 몸은 자유분방하게 움직였나 보다. 다른 침대를 쓴 나머지 둘도 별반 다를 것 없이 불편한 자세로 잔 듯하다.


ⓒ syllyee




그렇다. 다들 너무 커버렸다. 한 데 모여 자기에는 침대가, 방이 너무 작아졌다. 한 데 엉켜 있기에는 각자의 생활이, 세계가 너무 단단해졌다. 같이 어깨를 부대끼며 자던 것이 자연스러웠던 시절은 지나가고 서로의 선과 공간을 지켜주어야 하는 어른이 되었다. 각자의 침대에 누워 저마다 다른 꿈을 꾸는 개인들로 해체된 것이다.


막내가 이번 달에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내딛으면 더욱이 찢어질 것이고, 누구 하나라도 먼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면 지금처럼 연휴 내내 붙어있을 순 없을 것이다. 그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슬퍼진다.


설 연휴 마지막 날, 잘 가라는 인사를 하는데 어딘가 개운치 않다. 다시 일상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는 뒷모습들이 짠하다. 무거운 머리와 지친 다리를 마냥 서로에게 올릴 수 없기에, 각자의 짐을 누군가 대신 져줄 수 없단 걸 알기에.




엉켜 자는 밤은 없다.


혼자 그 시간을 보내야 한다. 덜 겪어봤기에 더욱 외롭고 혼란스럽다. 매일 계속될 것이다.


견뎌야 할 이유를 떠올리기보다는 견딜 수 있는 이유를 찾아본다. 네 명이서 함께 모여 살자 등의 어릴 적 유치한 소망, 자신만의 답들을 찾을 거라는 믿음, 그리고 어두운 밤 각자의 침대에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사랑의 마음. 그 가치들이 우리와 나의 밤을 지켜주는 조그만 빛이 되어줄 것을 믿는다. 그렇게 오늘도 홀로 잠을 청한다.


Edvard Munch, The Voice / Summer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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