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주특기는 추억팔이입니다.
지난 10월부터 요가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같이 하체가 발달한 사람은 스트레칭이나 요가로 하체를 순환시켜주는 게 좋다고 하여 일일 체험권을 끊은 것이 계기였다. 라커룸도 없이 덩그러니 건물 4층에 위치한 요가원. 조용한 음악, 어두운 조명, 은은한 향초 냄새, 그리고 선생님의 차분한 가이드.
60분 수업을 처음 받고 나서 강렬한 개운함과 편안함을 느꼈다. 당장에 수업 등록하고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거의 매일 저녁에 퇴근하고 요가를 하러 갔다.
생각해보니 요가 교실이 생애 처음은 아니다.
나는 우리 지역에서는 공부깨나 시킨다는 D 여고에 다녔다. 잘은 모르겠지만 사립학교였기 때문에 특성화 교육 과정을 편성할 수 있었나 보다. 체육 수업 이외에 요가 수업이 주 1~2회 있었다. 수업 전 쉬는 시간에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학교 본 건물을 나서서 왼편의 별관으로 향했다. 일층에는 여고생들의 안식처 매점이 있었고, 매점 가기 전 오른편에 작은 문이 나있었다. 문으로 들어가 계단을 내려가면 요가 교실이 있었다. 교실이라기보다는 넓은 방이었는데, 실내화를 벗고 들어가면 바닥에는 매트들이 깔려 있었다. 겨울에는 따뜻했고 여름에는 시원했다.
요가 선생님은 전형적인 요가 선생 이미지는 아니었다. 숏컷에 작고 마른 체격으로 강인한 이미지를 풍기는 40대 여성이셨다. 요가 기초 동작이나 명상을 가르치셨던 것 같다. 소녀시대 다리 만드는 방법이라며 다리를 앞으로 쭉 펴고 엄지발가락끼리 강하게 툭툭 차는 동작을 시키셨던 게 특별히 기억난다. 하지만 우리가 요가 수업을 사랑했던 가장 큰 이유는 ‘사바사나’ 때문일 것이다. 온몸에 힘을 빼고 가만히 누워있는 송장 자세이다. 선생님은 코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느껴 보라고 하셨지만, 숨을 세 번 정도 쉬면 코 고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한다. 그곳에서는 한낮에 여고생들이 단체로 약 먹은 듯이 기절해 있다. 수업 끝종이 울리면 다들 아이고 신음 소리를 내며 좀비처럼 하나둘씩 일어나 인사를 하고 교실을 나갔다.
선생님은 수학 수업 1시간 더 듣는 것보다는 머리와 마음을 1시간 쉬어주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셨는데, 고3은 국영수가 중요하니 예체능 비중을 줄이자는 교감 반대에도 요가 수업을 기어이 집어넣으셨다. 나는 운동 효과 따위엔 관심도 없고 이상하게 그 선생님과 친하지도 않았지만, 수업시간에 정정당당하게 잠을 잘 수 있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요가를 좋아했다. 잠이 많았던 나에게는 이 시간이 팍팍한 고3 생활 가운데 한 줄기 빛이었던 것이다. 별관 문을 나서면 따뜻한 햇살이 쏟아졌다. 그 나른하고 개운한 감상과 함께 요가는 기억 저편에 있어왔다.
10년이 지나고 지금은 내가 요가 전도사가 되었다. 다리를 180도로 찢지도 못하고, 완벽하게 머리 서기를 할 줄도 모른다. 전신 강화, 유연성 개선, 자세 교정 등 운동의 효과도 물론 중요하겠다. 하지만 나는 그저 동작을 수행하는 과정 자체를 사랑한다. 생각하는 부위에 숨을 불어넣고 다시 토해내는 작업. 할 수 있는 만큼 현재에 머무르되 한 동작 더 나아가기 위해 애쓰는 마음. 예민하게 살아나는 감각. 인내하는 가운데 흐르는 차분하고 강인한 에너지.
정확히 한 달 전, 기획팀으로 인사 발령이 났다. 뭐가 뭔지도 모른 채 전쟁터에 갑자기 투입된 병사가 된 듯했다.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해서 저녁 9시면 퇴근했다. 일요일 오후에도 출근은 물론이다. 야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요가원 수업을 잠시 멈추었고, 온 신경은 일터에 가 있었다. 오래 앉아 있다 보니 몸이 둔해지고 마음이 지치기 시작한다.
그렇게 3주가 지나고 처음으로 수요일에 칼퇴를 했다. 집에 와서 샌달우드 향의 초를 피우고, 유튜브를 켜 60분짜리 하타 요가 수련을 따라 했다. 그동안 긴장해있던 어깨가 풀리며 가슴 깊은 곳에 있던 나쁜 숨들이 밖으로 밀려 나온다. 몸은 물론이거니와 머리가 말랑말랑해진다. 역시 요가 수업을 추억으로만 남겨두어서는 안 되겠다. 내 몸과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마스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