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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오늘도 레벨 업하였습니다

인형이 기어 다녀요

by 그럴수있지

"그래! 그렇게! 조그만 더..!! 넘어간다..!!!"

3주 전까지 둘째 건강이만 보면 남편과 내가 하던 응원이다

보통 빠르면 100일에도 훌렁훌렁하는 뒤집기를

160일이 다 되어 가는데 몸만 휘어서 그 상태로 놀고 있으니

우리는 슬슬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에게는 부모들의 재롱잔치였을 거다.)

자기만의 속도로 언젠간 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너무 안일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하던

170일 즈음 감을 잡았는지 휙 뒤집더니

며칠 있다가 잠깐 첫째 책을 봐주는 사이에 배밀이를 해서 앞으로 이동해 있어 깜짝 놀랐다.

190일이 된 지금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이젠 잡고 일어서려고 한다.


다시 한번 느끼는 애바애다 (애 by 애)

아이마다 다 다르다

우리 아이는

조금 더 편안하게 누워있고 싶었나 보다


둘째 아이가 레벨업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아 첫째 때는 언제 뒤집었는데,

그때 내가 어떻게 해줬더라 '

항상 이런 비교를 하게 된다.

'첫째는 대근육 발달이 빨랐는데

둘째는 대근육은 조금 느리지만 소근육이 빠르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문득

아이들이 단계를 넘을 때마다 내가 참 다르다는 걸 느꼈다.


당연히 첫째와 둘째를 육아는 다르다.

상황이나 환경은 당연히 다르니 그 부분은 차치하고

경력직 엄마가 변화에서 느끼는 감정들 말이다.



첫째의 모든 순간은 감동이다


긴급 제왕절개 다음날 개복한 배를 감싸 안고 엉거주춤 자세로 가서 본 첫 내 아이.

빨갛고 작은 우리의 아이를 처음 본 순간은 감동이다.

귀여운 입으로 끄윽 트림을 하고 응가를 하고

뒤집고 기고 앉고 오물오물 이유식을 먹는 모든 순간이 감동이다.

이 감동은 말로 쉽게 써 내려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어머, 살겠다고 저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먹어..!

인형인 우리 아기가 움직여서 나한테 와!!

인형도 기어 다닐 수 있어!!?

이런 순간이 있을 때마다 세상 본 적 없는 극 F의 사람이 된다.

여기에는

분명 내가 한 생명체를 죽이지 않고 무사히 생존시키고 있다는 감동일 수도 있고

(나에게는) 아이의 거룩한 성장을 보는 감동일 수도 있다.

6살인 지금 제법 어린이다운 기특한 말을 할 때도 감동이 훅하고 들어오긴 한다.

엄마로 처음 겪어보는 일들이니 더 극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둘째는 모든 순간이 고마움이다


둘째의 모든 첫 순간은 엄마에겐 사실 첫 순간이 아니기에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되는 그 순간들에

"와! 우리 애가 사람처럼 기어 다닌다니!!!"

라는 감동을 느끼진 않는다.

내가 키우는 아이가 언젠가는 걷고 말하고 엄마에게 성질을 부릴 것이라는 걸 안다.

대신

아이가 건강하고 무탈하게 자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내 아이는 무조건 건강하지!"

라고 마냥 해맑았던 첫째 아이 때와는 다르게

그 사이 육아로 도배되어 있던 알고리즘의 끝에서 보았던 조금은 힘든 육아도 있다는 것,

아이의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엄마다.


그러니

아이의 태어나서 처음 내뱉은 울음에 대한 나의 첫마디는 '건강아, 고마워'였고

꿀떡꿀떡 우유를 잘 받아먹는 것도

처음 뒤집어서 나를 자랑스럽게 쳐다보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도 고마움이다.

내 옆에서 방실방실 웃어줘서 고맙다.

그리고

우리가 건강히 함께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당연하지 않은 보통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러기에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이 한 단계씩 나아갈 때마다

매 순간에 웃으며 함께 해 줄 수 있는

부모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그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 중 최고가 아닐까


아이들이 느끼는 엄마의 눈빛이

감동이든 고마움이든

항상 따뜻한 눈빛이었으면 좋겠다



+ 너희의 모든 순간은 엄마아빠에게 가장 소중한 순간이었음을

아이들에게 말해줄 수 있는 날이 올까

그 순간들로 우리의 하루가 우리의 계절이

더 진해졌노라고 이야기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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