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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중독됐어요

엄마역할에요

by 그럴수있지

나는 어려서부터 '엄마'가 되고 싶었다.

가족이 적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가족과 즐거웠던 추억이 많아서였을까

아니면 살면서 다른 것으로는 100프로 대체되기는 힘든

자녀를 출산하고 키우면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느껴보고 싶어서였을까

어쨌든 날 닮은 딸을 낳아 알콩달콩하게 살고 싶었다.


신혼을 즐길 생각조차도 안 하고 바로 첫째 아이를 가졌고,

아이가 태어난 후 온갖 휴가는 다 붙여 쓰고 1년 2개월에 복직했다.

복직하고 7시 반 출근 4시 반 퇴근에 유아식을 전부 만들어 먹이는

워킹맘 생활을 6개월 하고는 퇴사했다.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어린이집도 보낼 생각을 안 하고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럼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나는 계속 사회생활을 했을까

그랬으면 퇴사하는 시기만 늦춰졌을 뿐

아마 나란 놈은 계속 고민고민을 하다가 퇴사를 했을 거다.


그렇게 빠꾸 없는 전업맘 역할에 올인하기 시작했다.

아마 워킹맘 밑에서 자란 나에게 조금은 아쉬웠던 것들을

아이에게 채워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참 신나게 육아했다.

크게 예민하지 않은 아이여서 뭘 해도 귀여웠다.

이유식을 먹이면서 내 브런치도 같이 챙겨 먹었으니

아이에게 올인했던 나에게는 크게 어렵지 않은 육아였다.

아 이제는 고집이 생기나 싶은 유치원 입학하는 해에 둘째가 생겼다.

입덧 때문에 쓰러질 것 같을 때에도 첫째와 함께였고

아기 낳으러 가기 전 주까지 어린이 대공원에서 놀고

전날까지 놀이터에서 3주 떨어져 있어야 하는 첫째가 벌써 눈에 밟혀 신나게 놀았다.



산후조리원에서 짐을 정리하면서

이제

미친 일곱 살로 달려가는 여섯 살과 이제 막 태어난 아기

이 두 아이를 한꺼번에 케어해야 한다는 생각에

쓸데없이 비장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슬슬 엄마라는 역할에 중독되는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음..

뭐랄까 이건 워커홀릭 같은 느낌의 중독이다


" 애 한 명 잘 키워내고 있는데

거기에 한 명이 더 생기면

힘들겠지

하지만 둘 다 사랑하니까 한 명도 놓칠 수 없어

난 잘 해낼 수 있어!!

아니, 잘해야만 해 "


그 누구도 이렇게까지는 바란 적 없었던

어찌 보면 집착에 가까운 강박으로

아이들을 위해 해야 하는 일 들로만

하루하루를 쳐내는 삶이다.


예전엔 잘하던 딸 역할은 물론이고

스스로에게 소확행을 주던 것들도 던져버린 지 오래.

그 좋아하던 마블 영화는 안 본 지 얼마나 됐나


그러던 중

둘째가 5개월 즈음이었을까

방금 했던 말이 기억이 나지 않고

머리가 멍해지고 말도 어눌해지는 것 같으면서

내가 당연히 해야 했던 일들을 놓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의외로 내 나잇대의 엄마들이 한 번씩은 걱정하는 것들을 검색해 보기 시작한다.

'30대 치매'

'출산 후 치매'


아무래도 올 놈이 왔다.

번아웃이 안 오면 그게 이상하지



이젠 한껏 새 옷을 입고 꾸미고 화장을 하고 사진을 찍어도

이건 그냥 아줌마도 아니고 낯빛이 어두운 너무 찌든 아줌마.

난 미용실을 안 가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 저번주에 가서 17만 원 쓰고 왔는데..?

현타가 온다.


어느 날은 없어서 못 먹던 양념게장을 먹고 알레르기가 올라왔다.

얼굴까지 온몸에 올라온 두드러기에 무서워져

피부과에서 100종의 알레르기 검사를 했다.

결과는 알레르기가 있는데 세부적으로 양성을 보인 항목은 없었다.

최악이네

현타가 쓰나미다.

아, 내가 그동안 내 몸을 버렸구나


내 몸에게 미안했다.

아이를 재우고 조금이라도 더 쉬고 싶어서 컵라면으로 며칠 점심 먹은 게 미안했고

아이들은 샤워하고 나오면 오일까지 챙겨 척척 발라주면서

나는 바디로션은커녕 머리도 제대로 안 말린 것이 미안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내가 아프면 아이들은..?

엄마의 건강이 어떻게 오롯이 나만의 것일까

아이들의 우주가 아플까 봐 무서웠다.




애 둘을 낳으면

남들은 다니던 회사도 그만둔다는데

나는 이제야 나를 찾고 싶어졌다.

이러다간 다시는 못 찾을 것 같아서 지금이라도 나를 좀 찾고 키워야겠다.


몸에 좋고 좋아하는 음식도 먹고

좋다는 화장품도 사서 의식적으로 바르고

나도 같이 예뻐해 줘야겠다.

옛날 사진 보면서

"엄마도 예전엔 예뻤다~ 니들 키우느라 이렇게 됐어!!"

라는 구닥다리 멘트는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기분이 조금 이상한데..

나 이 생각 예전에도 했던 것 같은데?


아무렴 어때,

새해 초 헬스장 다닐 다짐 같은 작심삼일의 다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다짐이라도 계속하다 보면

나의 우주도 한 번은 더 보듬어 주겠지

힘내, 나의 메타인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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