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작가님
"할머니, 내가 전시회를 하는 초대장이에요, 놀러 와요"
"고모, 나 전시회 초대장이에요, 꼭 와야 해요"
한동안 아이는 만나는 사람마다 초대장을 주기 바빴다.
로미는 미술학원을 다니고 있다.
보통 미술학원처럼 원화나 조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이야기를 만들고 삽화를 그려 하나의 동화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곳이다.
글을 쓰고 싶은 나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느껴졌겠는가
이 학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오며 가며 눈독 들이다 6살 3월이 될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
3월 2일이 되자마자 상담을 가고 등록을 했으니 참았다는 표현이 맞다.
그 학원을 다닌 지 5개월이 되었는데
2년에 한 번 하는 전시회를 이번에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진행했다.
우리 딸 역시 운도 좋지.
아이가 그린 그림, 귀엽게 만들어낸 조형물, 얇지만 한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동화책까지
무려 갤러리의 벽에 당당히 걸려있다.
전국 학원 지점에 있는 아이들의 작품이 모두 모여있어서
수십 개의 작품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지만
참 신기하게 내 아이의 작품에만 조명이 더 비친 건 아닐 텐데도 눈에 바로 띈다.
이런 날의 사진을 놓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림과 함께 서보라는 엄마아빠의 성화에
아이는 상기된 얼굴과 약간은 굳은 몸으로 포즈를 잡고 어색하게 웃어본다.
딸아, 오늘 아침에 목걸이, 귀걸이, 반지까지 우리 패션에 힘냈잖아
당당하게 웃어보자
아이에 대한 리액션이라면 지구 어떤 부모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우리는
끊임없이 칭찬을 쏟아낸다.
"어머어머 여기서 제일 멋진 그림이 로미 그림이었어?"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려서 책까지 만들어내다니!"
한참 눈을 꿀로 채우고 아이를 거의 아이돌로 만들어가고 있을 때 즈음
선생님께서 아이를 데리고 간다.
테이프 컷팅식이라니..!!!!
원장 선생님 이런 센스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나요
저도 테이프컷팅식이라는 건 해본 적이 없답니다.
아이의 동화책을(!) 한 장씩 펴 본다.
내용이랄 것도 없는 한 페이지짜리 이야기지만
아이의 마음이 그대로 사랑스러운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다.
[토끼는 공주님 꽃 냄새가 나는 방귀를 뀌었어요]
'얘는 내면도 귀여움으로 가득한가 봐'라며 흐뭇하게 읽다가
약간은 어설픈 그림에 크큭 웃다가
어느덧 마지막 페이지에서 무언가를 보고 목에 턱 걸린다.
책에 작가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거지만
그게 내 아이의 이름이라니,
저 작은 손과 입을 가진 소중한 아이의 이름이라니.
책을 만들어냈구나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작가인 최작가님.
갤러리에서 나오면서까지 우리의 주책맞은 칭찬이 끊이질 않으니
아이가 부끄럽다고 그만하라고 한다.
"다른 사람의 칭찬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어,
스스로 열심히 노력했으면
충분히 칭찬을 받고 '고마워'라고 말하고 즐기면 돼! 멋지게!"
정작 본인은 그러지 못했지만 아이는 그랬으면 하는 마음에 다짐하듯 아이에게 이야기한다.
아이는 자신의 생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냈고,
그걸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 걸어두었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다른 이에게 설명하는 경험도 했다.
6살의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면서 부럽기도 하다.
오늘의 경험이 아이를 얼마나 더 성장하게 만들었을까
바라보는 세상이 얼마나 더 넓어졌을까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하고
이 세상에 본인이 해낼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행복하게 하나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 하나를 찾을 때까지 함께 있어줘야지.
오늘도 엄마의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