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찍 대들걸 그랬어

엄마의 생신

by 그럴수있지

아이 둘을 키우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많이 받기도 하고

넉살 좋은 사람인척 부탁도 많이 하게 되었다.

도움을 받는 사람 중 가장 편한 건 아무래도 친정엄마(a.k.a. 사랑)다


나의 사랑하는 친정엄마 장여사님의 60번째 생신이다.

환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생일이기 때문에 나름 꽤 준비를 했다.

친구분들이 좋다고 이야기했다던 리조트와 바비큐 공간을 예약하고

현수막에 케이크에 선물은 현금이 최고라며 같이 드릴 감사장도 주문한다.

원래 선물은 준비하는 사람도 즐거울 때가 있다.

엄마가 즐거워할 모습을 생각하며 열심히 준비하다가

서로의 입장 차이와 다른 일로 조금은 심란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엄청 크게 싸우고 말았다.

전화에 대고 순간의 욱함을 참지 못해 부득부득 소리를 쳤다.


사실 도움을 주는 것도 엄마지만 나의 감정을 많이 받아내는 것도 엄마다.

사람은 부모님께 부리는 투정의 총량이 평생에 정해져 있는지

사춘기 때도 안 하던 바락바락 대들기를 애 둘 육아한다고 힘들다는 핑계로 요즘 열심히 하고 있다.

우리 엄마도 애 둘을 키워낸 경력자인데 그분에게 유세 부리듯이 그러고 있다.

엄마, 미안해요 내가 어릴 때 꼬라지 부렸으면 그땐 엄마도 젊었지

이제 와서 부려서 미안해요.



남동생과 남편의 중재로 (이 얼마나 민폐를 만들어내는 40살 다 된 여자란 말인가)

꾸역꾸역 리조트에 도착하고

아이들과 수영장에서 조금 놀아주었다.

이제 바베큐장으로 가야 하는데 엄마와 일행이 도착하지 않는다.

판단 미스로 9시에 문 닫는 바베큐장에 8시에 도착하신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 오르고 몇 번을 전화했는지 모른다.

엄마는 도착해서 그 좋아하는 손녀에게 인사도 못 건네고

서운했을 딸한테 한마디도 쏘아붙이지도 않고

부랴부랴 고기를 뜯어 굽는다.


그 모습을 보면 K장녀는 이제 다른 건 생각이 안 난다.

그녀가 안쓰럽다.

계속 저렇게 자식에게 성질 한번 마음 편하게 못 내보고

본인을 기다리느라 배고플 자식을 위해 다 죽어가는 숯불 위에 고기를 올려놓는다.

숨도 못 고르고.

사과할 용기도 없는 딸은 괜히 아빠에게 볼멘 한소리하고 매달리는 10개월짜리 껌딱지를 안고

내내 잔디밭을 서성인다.

부랴부랴 고기를 굽던 손은 또 쌈을 싸기 바쁘고

다리는 딸에게 달려오기 바쁘다



어디로 먹었는지 모르는 시간이 지나고 방으로 돌아와 파티를 한다.

사돈이 보낸 꽃다발을 안겨드리고 현수막도 한번 보시라며 생색을 내본다.

아내의 마음을 아는 사위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회를 보며 분위기를 띄운다.

오늘만은 여왕 같길 바라는 마음으로 왕관으로 꾸민 케이크를 꺼내 불고

아들과 딸이 나란히 서서 감사장을 읽는다.

[늘 가족을 위해 애쓰시고 버팀목이 되어 주셔서

고된 순간에도 어머니의 존재의 든든함으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저희가 어머니를 지켜드릴 테니

오래도록 건강하시고 지금처럼 환한 미소로 함께 해주세요 ]

엄마의 눈과 내 눈에 같은 반짝거리는 것이 살짝 서린다.


함께 있던 1박 2일 동안

엄마는 내내 내 걱정이었다.

낯가림과 엄마 집착이 최고조인 10개월 손녀에게 '지 엄마 힘들게 한다고' 궁시렁도 해보고

환심을 사기 위해 기꺼이 스티커에 얼굴도 내준다.

우리 엄마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일을 많이 해서 그런 건지

손에서 살이 쭉 빠졌다.

그 손으로 자꾸 나를 쓰다듬는다.

쟤가 오죽하면 나한테 그랬을까 싶었나 보다

우리 엄마가 내 생각을 그렇게 한다.



아이를 낳고 엄마라는 역할이 생겼다는 핑계로

딸의 역할의 무게를 조금은 내려놓았다.

이젠 딸 역할이 조금 버겁게 느껴지면

내가 우리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생각하자.

그보다 작지 않을 우리 엄마의 마음을 생각해야지.

오늘은 딸의 다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