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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 어땠어?

40년 뒤에도 부탁해

by 그럴수있지

엄마가 더 기대하던 하츄핑 공연을 다녀왔다.

내가 기대를 했던 건 무려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심포니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클래식 공연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아이에게 최애인 하츄핑이 테마가 되는 공연이라니

첫인상을 지루하지 않게 심어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컸다.


공연을 보러 가는 당일,

아이는 새벽 6시 반부터 일어나 나를 깨웠다.

공연에 대한 설렘보다는 친구와 같이 보러 간다는 기대감으로 일찍 눈이 떠진 것이다.

그래, 엄마도 그 마음 이해하지,

엄마도 거의 8,9년 만에 보고 싶었던 친구 만나는 기분이야 지금!


너무 일찍 도착했는지

공연장 근처에서 아이 친구네와 밥을 먹고 한참을 놀다가

막상 시작할 시간이 다가오니 아이가 지쳐 보이는 게 큰일이다.

더군다나 친구와 자리도 떨어져 있어서 자리만 편하면 딥슬립하기 딱 좋겠는데

약간의 긴장을 하면서 자리를 잡고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악기를 들고 우르르 오케스트라 단원 분들이 나오고

지휘자 님이 나와서 인사를 한다.

"저분이 선생님 같은 분이야, 악기 연주하는 사람들이 좋은 소리를 만들어내게 계속 알려주실 거야"

라고 최대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을 해주려 노력한다.

연주가 시작되고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좋아하는 인형이 나온다.

반응이 궁금해 내내 손을 잡고 있던 아이의 얼굴을 보니

눈에 별이 반짝인다.

곡이 끝날 때마다 누구보다 박수도 열심히 치고

티니핑 노래를 따라 부르는 엄마에게 음악 좀 듣자며 핀잔도 준다.

발레리나가 독무 하는 것을 처음 본 아이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는다.

마지막 다음 공연에도 함께 하자는 캐릭터의 말에 누구보다 빠르고 크게 대답하는 아이.

아이가 어느새 이렇게 커서 내가 느끼는

음악의 울림을 느끼고 있었다.

기분이 이상하다.

아이의 높이에서 맞춰주던 것들이 이젠 나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높이까지 올라왔다.

이젠 우리가 함께 즐기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사실이 좋으면서도

훌쩍 너만의 세상을 만들 날이 그만큼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아쉬워지기도 하는 양면의 감정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늘을 너와 나는 어떻게 기억할까.

아이는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잡아본 날로 기억하거나

운이 좋다면 지휘자가 있는 오케스트라 공연을 처음 본 날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날 누구와 있었냐고 물어본다면

엄마니까 당연히 같이 있었겠지, 그게 중요해?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와 처음으로 함께 본 오케스트라 공연으로 기억할 것이다.

너의 첫 발레리나의 공연,

네가 피부로 느낀 첫 오케스트라 선율과 감동,

관객으로서 지휘자가 인사하는 것을 보고 박수를 보내는 경험

그 모든 처음에 내가 함께 한 것을 기억하겠지

아이의 그 모든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글로 남길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는 우리의 추억에 살을 찌웠다.



로미야,

엄마는 40년 뒤에도 너와 이런 공연을 보러 다니고 싶은데,

그때까지 사이좋게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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