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ris8679

나는 왜 슬프지 않은가.

by 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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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감 비슷한 것이었을까.

올해가 가기 전에 오빠가 잠들어 있는 곳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울산에 들를 때마다 ktx 역에서 가까우니 자주 갈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꼭 이렇게 한 해가 끝나가기 한두 달쯤 오빠한테 가지 못했다는 걸 자각한다. 그것도 오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마음에서 우러나는 의지가 아닌. 해야 하는 숙제를 끝내야 하는, 의무감 같은 기분이라는 게 조금은 서글퍼서 눈물이 다 났다.

울산 ktx 역에서 하늘공원으로 차로 약 30~40분. 니모가 차에서 재잘재잘 쉬지 않고 떠드는 시간 동안 차창을 내다보며 오빠를 생각하다가 나를 돌아봤다. 나는 왜 그리 슬프지 않은가에 대해서.
왜 드라마나 영화 같은 곳에서 보면 가족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거나, 문뜩 생각이 날 때 울음을 참지 못하던데. 나는 아주 태연하게 오빠가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했던 것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오랜 시간 오빠는 아팠다.

내 기억 속의 오빠 모습은 복수에 물이 차올라 배는 임산부처럼 볼록했고, 그와는 대비될 정도로 야윈 얼굴과 앙상한 다리는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이라 익히 들었고 한약으로도 어찌 안된다는 걸, 이렇게 평생 살아갈 수 있다고 들었었다.
그러니 어느 정도 내 마음속에서는 오빠의 건강을 이미 체념했던 것이다.

체념한 것으로도 모자라 나는 이기적으로 매일같이 기도했다.

‘ 뱃속의 아가가 나오기 전까지만이라도, 오빠를 데려가지 말아 주세요.’

오빠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서 하늘나라로 데려가지 말라는 간절함이라기보다, 내 아가가 소중하니 아가가 어느 정도 뱃속에서 자랄 때까지만이라도 기다려달라는 애원의 기도였다.

이런 내 기도가 어느 정도 통했는지 아가를 품은 지 팔 개월이 지나서야 오빠는 그렇게 별이 되었다. 새끼를 품고 있는 어미는 강해서 본능적으로 모든 감정을 통제하고 그 무엇으로도 영향을 줄 수 없도록 차단했다. 장례식장에서 최대한 사람들의 눈을 맞추지 않으려, 말을 섞지 않으려 노력했고 수시로 찾아드는 태동과 복통으로 틈틈이 가족들을 위한 방에 들어가 몸을 쉬게 했다.

오빠, 내가 너무 오랜만에 왔네.
니모 많이 컸지? 근데 있잖아, 니모 피부가 많이 아파.
니모 피부 좀 낫게 해 주면 안 될까. 하고 돌아섰다.
난 오빠 앞에서 끝까지 이기적이구나.

생전 오빠와의 숱한 갈등을 제쳐두고라도,
미리 차곡차곡 쌓아뒀던 이기심 덕분에 난 그리 슬프지 않았던 걸까. 이기심은 슬픔을 마비시키는 걸까?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해 애써 오빠와의 좋았던 추억을 하나둘씩 떠올려본다.

" 혜진아, 내가 최근에 가장 기뻤던 일 얘기해줄까?
하나는 네가 임신했다고 했을 때 소름 끼치게 기뻤어. 너무 신기하지 않냐? 네가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다니. 아 너무 기쁜 일이야. 두 번째는 내가 꿈을 꿨는데., 학교 다닐 때 좋아하던 친구들과 신나게 수다 떨며 노는 꿈이었는데. 아 그게 그렇게 편하고 즐겁더라고."
_ 오빠와의 마지막 통화내용 중.



2018.11.17 오빠한테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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