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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의 심리상담

by 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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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선생님과 상담할 수 있는 시간이 한 시간뿐이라 선생님께 메일로 제 마음 상태를 미리 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지난주에 현재 마음이 어떤지 글로 적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주에 그 글을 다시 읽으니 지금 마음 상태와는 또 다른 거예요. 당시 심각하게 생각했던 고민거리가 지금은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어떤 얘기를 할지 정리하지 못하고 그냥 마음 편하게 왔습니다.

선생님: 반가워요, 저도 오늘 마음 편하게 이 자리에 왔는데요. 만약에 혜진씨가 내 마음이 이러하고 저러한 고민이 있으며, 어떤 게 궁금하다며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왔더라면 ‘ 뭐야, 이 사람, 강박증이 있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웃으면서) 그래요, 저는 이 한 시간이 어찌 보면 짧지만 혜진씨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래요. 지금은 (마음이) 어떤가요?

나: 답답한 것 같아요. 자주 무기력하고요.

선생님: 언제부터 그랬나요?

나: 꽤 오래된 것 같아요. 아이 아토피가 심해지면서 하루 종일 끼고 있다 보니… ( 잠시 멈칫 ) 아니, 아니.. 어쩌면 제가 모든 원인을 아이의 아토피로 돌리는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는 이유와 어떠한 불쾌한 감정이 일어나는 모든 원인을 전부 아이 아토피 탓으로 돌리고 있어요. 그래서 괴로워요.

선생님: 지금 눈앞의 현실이 그러니까요. 그럴 수밖에 없죠. 하고 싶은 일이 뭐죠?

나: 중국어 공부도 하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혼자 여유롭게 산책도 하고 싶고요. 일도 시작하고 싶어요.

선생님: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죠.

선생님: 혼자만의 시간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해서 아침에 밥 먹고 나면, 아이에게 뽀로로 동영상을 한 시간 틀어주고 그 시간에 저는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거든요. 그렇게라도 아침에 혼자 식탁에 앉아 무언가를 생각하고 기록하는 시간으로 하루의 에너지를 채워요. 그 시간이 저에겐 참 소중하죠. 문제는, 그 시간을 편하게 보내지 못한다는 거죠. 아이에게 뽀로로 동영상 틀어주는 것에 굉장히 큰 죄책감을 갖고 있어요. 동영상 보여준다고 해서 애가 뭐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편치는 않아요.

선생님: 왜죠? 그거 서로에게 윈윈(win-win) 하는 시간 아니에요?
좋은 엄마가 뭐라고 생각해요? 밥 먹여주고 재워주고 그 정도면 충분한 거 아니에요? 엄마가 한 시간 충전하고 기분 좋게 웃으면서 아이랑 놀아주고 그게 더 좋지 않을까요?
중요한 건, 엄마가 방전되면 안 되는 거예요. 육아는24시간이잖아요. 어떻게 하루 종일 아이와 신나게 놀아줍니까? 엄마도 충전하는 시간이 있어야지요.
… …

나: 저도 나름 나만의 시간을 갖고자, 노력해본 게 있어요.
첫 번째는 중국어 모임을 꾸렸어요. 육아하는 엄마들 중에 중국어 공부하고 싶은 분들을 저희 집으로 초대해서 돌아가면서 준비한 내용을 발표하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었는데. 당시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든 상황이었지만, 더 힘든 건 ‘잘해야 한다’라는 부담감이었어요. 제가 준비를 잘 하지 못하면 집에까지 찾아온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결국 몇 번 하지도 못하고 스스로 포기했죠.
두 번째는 중국 원서 강독 오프라인 스터디였어요. 처음에는 ‘열심히 공부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온라인으로 글을 올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남의 시선을 굉장히 의식하고 있더라고요. 사람들의 댓글이나 공감 수에 따라 기분이 좌지우지되고요. 순수한 제 생각이나 글이 나오지 않고, 꾸미는 문장을 갖다 대거나 기교 부리는 듯한? 아무튼, 제 자신이 너무 가식적으로 느껴져서 또 포기했어요.

선생님: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데, 육아하는 엄마들은 사회적 관계가 끊기다 보니 혜진 씨처럼 온라인상의 관계가 중요하게 다가오죠. 당연히 그럴 수 있어요. (중략)
음, 만약 혜진 씨가 준비한 것들이 잘하지 못했어요. 최악의 상황은 뭘까요? 혜진 씨가 누군가의 집에 놀러 갔는데 배가 고파요. 그 사람이 진수성찬은 차리지 못해도 집반찬들을 내놓았어요. 혜진씨는 그 사람을 탓할 건가요? 아니잖아요?남들은 아무도 뭐라고 안하는데 혜진씨만 지레 겁먹고 도망갔어요.
무언가를 계속 시도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데 마음속에 ‘자기부정’하는 메시지가 자꾸 들리네요. 그죠?
결혼 전에는 어떤 일을 하면 가장 즐겁고 행복했어요?

나: (갑자기 편안해졌다) 중국어요. 아, 그런데 최근 들어 깨달은 게 있는데요.
중국어는 제게 그저 ‘도피처’였던 것 같아요.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중국어를 했는데 그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고, 오빠는 아파서 쓰러져서 한동안 얼굴을 볼 수 없었거든요. 학교 갔다가 집에 들어오면 늘 아무도 없었어요. 24평짜리 집이 제게는, 아무도 없는 텅 빈 운동장 같아서 집에 들어가기 싫었어요. 너무 혼란한 시간이었는데 중국어를 하면 너무 재밌는 거예요. 중국어만 하면 몰입돼서 모든 걸 이겨낼 수 있었어요. 무력감, 외로움,절망감, 불안, 슬픔 같은 것들이요. 그리고 주위 사람들도 '잘한다.잘한다' 하니깐 인정받는 것 같고, 그래서 더 잘하고 싶어서 그야말로 미친 듯이 매달렸어요. 유일하게 잘하는 거, 그게 중국어밖에 없었어요.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건 중국어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 시절 아픈 상처, 감정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였던 거예요. 그걸 깨우친 뒤로는 중국어를 감히 못하겠더라고요.

선생님: 어떻게 그렇게 깨우친 거죠? 무슨 계기가 있었나요?

나: 제가 8월에 우연히 김형경 작가의 『사람풍경』이라는 책을 읽었거든요. 사람의 감정, 내면에 대해서 풀어놓은 심리학 에세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걸 읽으면서 타인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제 자신을 볼 수 있었어요. 그 뒤로 김형경 작가의 심리학 에세이는 죄다 사서 읽었거든요. 8월달부터 지금까지 너무 괴로웠어요. 마치 벌거벗은 사람이 된 것 마냥 제 민낯을 똑바로 들여다보게 돼서 고통스러웠어요.

선생님: 고통스러우면서도 계속 그 작가의 책을 사서 다 읽었잖아요. 왜 그랬죠? 괴로우면서 왜 계속 읽었나요?
나: (멍~때림) 나란 사람을 더 잘 알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 이래서 그때 내가 이런 생각을 했고 유독 우울함을 많이 느꼈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하며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요. 근데 지금 딱 거기까지 멈춰있어요.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거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딱 거기까지예요. 앞으로는 어떡하지? 미운거 나쁜거 이기적인거 다 봤는데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그게 지금 젤 고민인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껏 겪었던 심리적 불편함을 다 엄마 탓으로 돌리는 것도 문제예요. 유년시절의 아픔이 커서까지 영향을 주고 발목을 잡는 것 같은,죄다 엄마 탓을 하는 거. 일종의 피해의식 같은거죠.그게 참 싫은데...그렇게 되네요.

선생님: 아픔의 시간이 있었겠지만 그래도 혜진 씨는 엄마에게 좋은 유전자를 많이 물려받았다는 거 아시죠?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힘들고 아프면 ‘ 아, 힘드네.’ 여기까지 머물러요. 하지만 혜진 씨는 ‘아, 힘드네? 왜 힘들지? 아 그럼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잖아요?
그리고 중국어가 ‘도피’ 였다고 했는데, 제가 볼 때는 한 줄기 ‘빛’ 인데요?
중국어라는 '빛'을 붙잡고 경제활동도 하고, 즐거움을 느끼고, 사람들을 만나고 몰입을 하고. 그죠? 그 빛 놓치지 말아요. 그 빛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변화가 있을 것 같네요.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요. 유년시절 아픔을 들춰서 과거에 집착하면 미래를 내다볼 수 없잖아요. 엄마와의 상처는… 지금은 시간이 충분치 못하지만 혜진씨가 그럴 여유가 된다면 전문가를 만나서라도 깊이 충분히 꺼내서 얘기해보고 그 아픔을 잘 말려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중략)
아이가 어떤 삶을 살길 원하나요?

나: (이때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아가고, 그 과정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그럼 엄마가 보여줘야죠. 엄마도 그렇게 살고 있다고 보여줘야죠.
가장 좋은 교육은 산교육이죠.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거 아시죠?
스스로에게 자꾸만 부정적인 메세지를 던지고, 부족한 사람이라 평가하는데 아이도 커서 ' 엄마, 나는 이것도 부족하고 저것도 못하고 왜 그럴까? ' 하면 뭐라고 얘기할거예요?
(중략)
한가지, 제안하나 하고 싶어요. 이건 혜진씨가 해도 되고 안해도 되고 선택하는 거예요. '~것 같다'라는 말투 있잖아요. 고쳐보는 거예요.'내가 더운 것 같다.''슬픈 것 같아.'보다는 ' 나 더워. 슬퍼' 이렇게요.
말이라는게 내 감정을 말해주기도 하지만, 말에 의해 감정이 지배받기도 하거든요. 사소한거지만 조금씩 고쳐나가보면 내 마음에 확신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하나, 나를 방전해가면서까지 자신을 탈진해가면서까지 무언가를 하려 하지 마세요. 내가 지금 움켜잡고, 놓치지 않으려 했던 것들이 사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어요. 만약 5년 내내 매일 할 수 있는 거, 그렇다면 하세요.
어떤 경우라도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해요.내가 온전하지 못하면 아이도 남편과의 관계도 좋을 수 없어요. '지금 이대로도,이 정도면 충분한거 아냐?’ 라는 자뻑! 내면의 긍정적 메세지가 필요해요. 오늘부터 '자뻑 연습' 좀 하셔야겠어요.(웃음)
자기 자신에게 잘해주세요.
... ...
아이가 아프면 엄마가 많이 힘들죠? 아토피는 장기레이스라 아이가 크면서 점차 좋아질거예요. 저희 아이도 그랬구요. 그러니 이 시간동안은 아이의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잘 형성해주면 좋을지에 힘썼으면 좋겠어요.

_ 2018.11.1
한 시간의 심리상담을 끝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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