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에는 호랑이가 산다.

생각하면 절로 따스해지는

by 키작은 울타리

유년시절,

적란운이 꾸물꾸물 거리는 날이면

숙제가 하나 더 생기는 날이었다.

그런 날은 집에도 일일 선생님이 있었다.


밭일을 나가시는 엄마가 내준 숙제는

장독대 항아리 뚜껑을 닫는 일이었다.


까치발을 딛고 항아리 안을 들여다보면

메주가 둥둥 떠 있는 간장 속에는

흰 구름이 우아한 몸을 담그고 앉아 있었다.


고양이는 장독대를 최적의 진지로 삼고

뚜껑 위에 올라서서 아래 세상의 동태를 살폈다.

항아리 틈새는 몸을 숨기는 고양이들의 안전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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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지나가고 낙엽도 잠시 쉬어 가는

누구에게나 개방된 장독대였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큼은 불청객이었다.


노느데 정신 팔려 숙제를 깜빡하는 날이면

온순했던 엄마는 온데간데없고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가

장독대 앞에서 지축이 흔들리도록 포효를 질렀다.


똥파리가 모여들어 왁자지껄 종일 떠들어대고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장독대지만

그곳은

엄마의 세월과 장맛이 익어가는,

기필코 사수해야만 하는 엄마의 영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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