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뚫고 나온 추억

대지에 일렁이는 하얀 삐비꽃

by 키작은 울타리

봄 햇살에 등 떠밀려 아이들은 논둑으로 간다.

“여기 여기요. 저 여기 있어요.”

불에 탄 검은 땅을 뚫고 올라온 삐비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손을 높이 들고 있었다.

검은 땅에서 꼿꼿하게 서 있는 파릇파릇한 몸은

은폐물이 없어 정체가 그대로 노출되고 있었다.


눈에 띄는 족족 뽑아 양손 가득 움켜쥐었다.

알몸을 돌돌 말아 감싼 속싸개잎을 벗겨내고

희고 보드라운 속살을 날름날름 발라 먹었다.


아주 오래오래 씹었다.

가난한 농부 아버지의 달달한 땀내가 입안에서 단단해졌다.


논둑을 싹쓸이했다고 생각했다.

훑고 지나간 자리에 미처 뽑지 못한 삐비가

꽃이 피어 풍만한 몸을 흔들어대면

점빵 문턱을 넘지 못하고 돌아서는 미련 같은 것이

어린아이의 가슴에서도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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