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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Nov 24. 2021

11월의 캘리포니아

아직도 여름

11월, 캘리포니아 LA의 날씨는 맑음 그 자체. 11월에 접어들자 잠시 추워지나 했지만, 금세 겨울 날씨는 온데간데없다. 사막 기후 답게 아침 저녁은 춥지만 낮에는 여전히 반팔, 반바지가 어울리는 날씨다.


거의 1년 내내 여름 날씨를 자랑하는 LA지만, 12월 후반부터 1월, 2월까지는 눈 대신 비가 오며 나름 춥긴 하다. 그러니 11월은 여름 날씨의 끝물인 셈이다. 끝나가는 여름이 아쉽기도 하고, 미국의 추석과도 같은 추수감사절 연휴를 앞두고 어디라도 놀라가고 싶은 마음에 지난주 급여행을 떠나게 됐다. 떠나기 가장 만만한 '팜스프링스'로.


이번 여행을 계획하게 된 가장 첫번째 동기는 미끄럼틀 달린 수영장이 있는 호텔에 반해서다.

호텔 예약사이트에서 사진을 보자 중학생 때 엄마와 친구들과 함께 여행갔던 괌의 PIC 호텔에서의 추억이 떠올랐다. 내가 중고등학생일때만 해도 해외여행은 지금보다는 특별한 경험이었는데, 엄마는 매년 나와 친구들을 데리고 패키지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건 누구보다도 엄마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나와 친구들의 여행 가이드 역할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내 친구들의 영어 과외를 도맡았던 엄마는 친구들에게 아줌마가 아닌 '선생님'으로 불렸다. 친구들은 엄마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친근한 관계였고, 그랬기에 친구들의 부모님 또한 엄마가 이끄는 해외여행을 흔쾌히 허락했던 것이리라.


공부하느라 살도 찌고, 정신적으로도 퍽퍽하던 열 일곱의 겨울방학에 엄마는 나와 내 동생,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그리고 내 친구 3명을 데리고 괌을 향했다.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곳은 괌 PIC 호텔. 그곳은 지금까지 경험했던 그 어떤 곳보다도 지상낙원처럼 여겨졌다. 무엇보다도 수영장 때문에.


PIC 호텔의 수영장은 정말 컸다. 한 눈에 수영장의 모습을 전부 다 담을 수 없었다. 수영장은 여기 저기에 퍼져 있어서 한 장소에서 또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해가며 놀 수 있는 구조였다. 각 수영장 마다 테마가 달라서 골라가며 노는 재미가 있었다. 친구들과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수영복을 안에 껴입은 채로 조식부페를 먹은 후, 곧바로 수영장으로 직행했다.


수영장은 하루 종일 놀아도 질리지 않는 곳이었다. 물에서 헤엄치며 친구들과 얼음 땡을 한다던가, 자세를 바꿔가며 미끄럼틀을 탄다던가, 호텔 직원들이 진행하는 다양한 게임 프로그램에 참여하던가 '노는 일'은 무궁무진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밤 수영을 하다 자쿠지에서 만난 미국 소년과 소년의 아빠다. 우리는 한국에서 배운 영어를 나름대로 구사하며 "How are you?" "What's your name?" "Do you know Leonardo DiCaprio?와 같은 질문들을 늘어놓았다. 소년과 소년 아빠의 눈이 신기할 정도로 파란색이어서 넋을 놓고 그들의 얼굴을 쳐다봤다. 소년의 얼굴은 아직도 희미하게 기억날 정도로 잘생겼다. 당시 우리 눈에는 그랬다. 마치 할리웃 연예인과 마주한 느낌이었달까. 그들과 대화를 하며 자꾸만 소변이 마려웠던 건 영어울렁증 때문이었을까, 소년의 얼굴 때문이었을까?


친구들 4명과 너무나 즐거웠던 괌에서의 추억이 팜스프링스로 떠나고 싶게 만들었다. PIC의 수영장이 떠오를 만큼 규모가 큰 팜스프링스의 하얏트 호텔이 가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11월 중순인데도 팜스프링스의 온도는 낮 최고기온 26도였다. 수영을 하기에 살짝 춥기는 했지만 수영장 물이 따뜻해서 그나마 괜찮았다. 호텔 체크인을 오후 5시에야 하고서 룸에 들어가 저녁까지 먹으니, 시각은 오후 7시. 이 밤의 끝을 붙잡고자 야간 수영을 하러 나갔다. 호텔 테라스에서 바로 수영장으로 진입이 가능해서 편했다. 수영장에서 물 만난 물고기가 된 아이들. 5살, 2살 짜리 아이들은 서로 붙잡기 놀이를 하며 꺄르르 웃었다. 밤 수영이라 다행히 수영장에 우리 밖에 없어서 마치 단독 빌라 수영장을 쓰는 것 같았다. 덕분에 코로나19 걱정도 피할 수 있었고.


수영장에서 놀며 괌 PIC 호텔에서 밤 늦게까지 수영을 하며 놀던 열일곱의 나와 친구들이 떠올랐다. 우리 네명중 나를 포함해 두 명은 결혼해 아이를 낳았고, 나머지 한 명도 내년이면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다. 서른 셋이 된 우리는 벌써 20년지기 친구들이다. 여전히 그들과 삶의 희노애락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언제 다시 한 번 4명이서만 여행을 가볼 수 있을까? 20대 중반 이후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것 같은데.


11월의 캘리포니아의 여름을 즐기며, 친구들이 보고싶은 밤이다. 우리 10년 안에는 꼭 여행을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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