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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Jan 06. 2022

미국 해돋이 명소에서 느낀 한국인의 정

해돋이의 매력은

유년 시절 실용성을 추구하던 나의 부모님은 '뭣하러 매일 뜨는 해를 보기 위해 사람이 바글바글한 정동진을 찾아 가는가' 의문을 제기하곤 하셨다. 저건 다 쓸모없는 일이라며, 에너지 낭비라고도 하셨던가. 때문에 나와 내 동생은 해돋이를 보러 여행을 가본 기억이 없다. 집에서 연말 시상식을 보며 가족들과 케익을 불고, 새해 소망을 공유하는 게 우리 가족의 새해 맞이 방식이였다. 그 점에 딱히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니다. 연말 시상식을 함께 보며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는 것도 사실 꽤나 좋았다. 한국의 겨울은 추웠고, 추위에 취약한 나는 겨울에 외출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때문이었는지 지난 2020년 인생 최초로 1월1일 해돋이를 직접 봤다. 그것도 LA에서 남편과 함께. 당시 무슨 마음으로 갑작스럽게 해돋이를 보러 갔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그 때의 기분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한 해를 잘 살아내겠다는 의지, 다짐, 상쾌함 등의 감정들이 가슴 속에 솟구쳤던 기억. 그리고 진짜 그런 해가 될 것이라는 확신 마저 들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냈던 2020년이지만, 나와 남편의 멘탈이 나름대로 건강했던 건 다 새해 첫날의 해돋이 덕분이 아니었을까 종종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올해에도 해돋이를 보러 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아이들도 데리고. 만 5세, 2세인 두 아들을 데리고 과연 등산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의미있는 한 해를 보내기 위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LA에서 해돋이 명소는 '그리피스 천문대'로, 이곳은 LA에서 전망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LA에서 1월1일 해가 뜨는 시간은 대개 오전 7시 전후로 그다지 이른 시각은 아니다. 자동차를 타고 바로 그리피스 천문대가 위치한 곳까지 올라가면 별다른 어려움없이 해돋이를 즐길 수 있다. 단, 직접 등산을 해서 해돋이를 보고자 한다면 오전 6시까지는 등산로 밑에 도착해야 한다. 


우리 가족은 해돋이 감성을 살리기 위해 등산을 하기로 했다.


새벽 5시, 깊이 잠들어 있는 두 아들을 내복 위에 옷을 입혀 보쌈하듯 차에 태웠다. 아이들은 졸음과의 사투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차에 탔다. 집에서 그리피스 천문대까지는 약 25분. 깜깜한 창 밖을 바라보며 둘째가 물었다. "우리 모험 떠나는 거야?"

아이들 입장에서는 모험을 떠난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그리피스 등산로 초입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6시. 아직 해가 없어서 어두캄캄했다. 각자 손전등을 들고 자그마한 빛에 기대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부엉이가 우는 소리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 갑자기 야생동물이라도 튀어나오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엄습했다. 남편과 각 한 명씩 아이를 맡았다. 난 첫째 아들의 손을 꾹 부여잡고 앞으로만 발걸음을 향했다.


처음엔 춥다고 짜증을 내던 아이들은 기대 이상으로 산을 잘 올랐다. 한 번도 나와 남편에게 안아달라는 땡깡을 부리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내기 위해 안아주겠다고 손을 내밀어도 한사코 거절했다. 아이들도 스스로 직접 산을 오르고 싶었던 것이다. 


고지가 가까워지고, 해가 차츰 떠오르자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곳이 과연 미국 LA가 맞는가? 싶을 만큼 한국인들이 많았다. 남편과 "역시 해돋이는 한국인들 특유의 감성인가 보다"며 웃었다. 아이들과 등산한 우리들을 본 한국 아주머니들은 "어머머,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기특하네!"라며 웃으시더니 가족사진을 찍어주셨다. 덕분에 남편과 나 아이 둘, 4명의 완전체 가족사진을 간직할 수 있게 됐다. 등산회 모임인지 한국 아저씨들, 아주머니들이 유독 많았던 해돋이 현장. 서로 마주치면 덕담을 주고 받았는데, 미국에서도 한국인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1월1일의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가족들이 건강하게 별탈없이 1년을 지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은 없으리라고도 생각했다. 올 한 해는 불안해하지 말고, 조급해하지도 말고, '현재'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해돋이 덕분에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는 힘을 얻어가는 것만 같다. 해돋이 때문에 일찍 일어나니까 1월1일 하루가 유독 길게 느껴졌다. 24시간을 보다 더 알차게 쓴 느낌이 들었달까. 그래서 남편과 앞으로 주말마다 주기적으로 가족 등산을 해보기로 했다. 귀중한 시간을 길게 쓰기 위하여. 보다 행복한 2022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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