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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Jan 20. 2022

미국판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한끼줍쇼 in 미국


1년 전 하우스로 이사오고 나서 우리 가족의 삶은 이따금씩 '응답하라 1988' 시절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가족이 이사온 곳은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 단지들로 이뤄진 작은 교외 도시다. '게이티드 커뮤니티'란 하우스가 하나의 단지 안에 속해 있고, 비거주자가 단지 안으로 들어오려면 게이트(gate)를 통과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일반 하우스들이 별도의 게이트 없이 한 채씩 위치하고 있는 것과 달리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가족이 거주한 단지 옆에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아우르는 K-9(킨더가든~9학년)가 자리잡고 있다. 학교가 가깝다는 사실이 이곳으로 이사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한국에서는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가 인기라는데, 땅덩이가 넓은 미국에서는 그런 환경이 조성돼 있는 곳이 거의 드물다. 때문에 하우스 단지 옆에 바로 학교가 있다는 사실은 마치 미국판 '초품아'로 느껴지기 충분했다. 


이사와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보니, 학교가 가깝다는 사실은 기대 이상으로 장점이 많았다. 가장 좋은 점은 동네 친구가 생긴다는 것. 아이들은 학교 끝나고 서로의 집에 오가며 놀거나, 저녁 먹고 단지 내에서 킥보드를 탄 채 만나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유년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는 지금처럼 세상이 삭막하지는 않았다. 엄마, 아빠 없이 친구들과 함께 걸어서 초등학교를 등하교 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날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학교가 끝나면 길가 트럭에서 500원에 파는 컵떡볶이를 사서 친구들과 히히덕 거리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가방만 휘리릭 내려놓은 채, 나와 친구들은 곧장 아파트 놀이터로 향했다. 엄마가 저녁 먹으러 집에 오라고 창밖으로 소리치기 전까지는 자전거, 롤러브레이드, 킥보드를 타며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함께 하던 술래잡기, 탈출, 땅따먹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저녁을 먹자마자 또다시 뛰어나가는 날도 잦았는데, 지금와 되돌아보니 우리 부모님은 나를 참 방목하며 키우셨구나 싶다. 


그 시절의 내가 미국 LA 교외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일단 이곳에서는 한국처럼 사교육 시장이 활발하지 않다. 학부모들은 농구, 축구, 발레, 미술, 피아노 등과 같은 예체능을 중심으로 한 학원을 주로 보낸다. 물론 아이들이 고학년이 될 수록 공부 관련 학원을 보내기도 하겠지만, 한국과 비교가 될 수준은 아니다. 


아이들은 학원을 가긴 커녕 대부분 놀면서 시간을 보낸다. 특히 우리 동네 아이들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플레이 데이트'를 자주 한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위해 가감없이 집을 오픈한다. 신도시 특성상 동네의 집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생겼다. 아이들은 자기 집 보다는 친구의 집을 선호한다. 아무래도 새로운 장난감이 있다보니 그런 듯 하다. 다음에는 너희 집에서 놀자며 약속을 잡는 아이들. 매주 플레이 데이트는 끝없이 이어진다. 


게다가 아이들의 체력은 끝장나게 좋다. 아이들은 한 번 만나면 노는 데 끝이 없다. 특히 집에서 만나다 보니 더욱 그렇다. '플레이 데이트'를 했다 하면 저녁까지 먹고 가는 게 기본 옵션이다. 덕분에 학부모들은 플레이 데이트를 하는 날이면 엄마, 아빠할 것 없이 주기적으로 만나 밥을 먹곤 한다. 집밥을 직접 하거나, 배달음식을 시켜서 서로에게 대접한다. 밥 한 끼 나눠먹으며 이웃의 정을 느낀다.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이웃간 서로의 신상을 잘 모르기 일쑤인 한국에서 살다가 이웃의 집을 주기적으로 오가는 이곳에서의 삶이 정겹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이웃간 친한 모습이 내심 부러웠는데, 이사온 지 1년 만에 우리 가족에게도 사이좋은 이웃들이 많이 생겼다. 앞으로 이곳에서의 삶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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