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ris Seok Feb 03. 2022

설날 맞이 여행

타지에서 보내는 설날 

타지에서 살면 한국 명절에 무감해지게 된다. 설날, 추석이라고 해도 미국에선 여느날과 다름없는 평일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나와 남편은 근무를 한다. 그러니 한국 명절이라 해도 달라질 건 1도 없다.


그런데도, 

마음 한 구석에는 설날이 다가오면 묘한 설렘이 희미하게 피어나곤 한다. 


설날은 10대 시절 내내 1년 중 가장 기다리는 명절이기도 했다. 설날 받은 세배돈은 한 해동안 든든한 비상금 역할을 해줬으니, 어린 시절의 내가 설날을 어찌 기다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반가운 친척들도 만나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주고 받은 뒤 새배를 하면 돈이 술술 따라오는 명절, 설날. 


유학을 온 후로는 설날 차례에 참석해 본 적이 없다. 게다가 난 결혼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살고 있으니, 내게 설날의 기억은 과거 10대 시절 언저리에서 머물러 있다. 모든 추억들이 그렇듯 설날의 추억은 아름답게 미화되어 더욱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친척들과 모여 TV에서 실시간으로 방영하던 '검정고무신' 만화를 보던 기억. 그날 받은 세배돈을 쓰기 위해 아파트 문구점으로 뛰어가던 기억. 친가쪽 차례가 끝나면 빨리 외갓집을 가자고 엄마 아빠를 보채던 기억.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자니 마음이 몽긍몽글해졌다. 


설날만 다가오면(추석도 마찬가지) 타지에서 울렁이는 마음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울렁임에는 한국을 향한 향수가 내포돼 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가족들과 떨어져 친지 한 명 없는 미국에 살고 있나, 하는 억울함과 아쉬움의 감정이 뒤섞여 명절 연휴기간 동안 나를 따라다닌다. 

이런 나를 잘 아는 남편은 여행을 제안한다. 주말에 가볍게 1박2일이라도 어딜 다녀오자고.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과거와 비교해 한국에서도 딱히 명절을 챙기는 분위기는 아니었으므로, 내가 느끼는 향수의 강도는 예년 대비 현저하게 낮았다. 그러나 설날 만큼은 특별하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에 남편과 하루 전날 급하게 호텔을 예약했다. 앞서서도 몇 차례 브런치에 글로 기록했지만, 남편과 나는 급 떠나는 여행을 즐긴다는 점에서는 코드가 아주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다. 


  



LA에서 급떠나는 여행지로는 팜스프링스(Palm Springs)처럼 만만한 곳이 또 있을까. 


두 달에 한 번 꼴로 팜스프링스를 찾고 있는 것 같다. 도장깨기 하듯 팜스프링스에 위치한 여러 호텔들을 투어하는 것도 재미있는 데다 LA에서 2시간이면 도착한다는 거리상의 이점도 크다. 


설날에는 자고로 꼬까옷을 입어야 한다. 그런 핑계로 팜스프링스를 가는 길에 '데저트힐 아울렛'을 잠시 들렸다. 난 미국에서 가본 아울렛 중 이곳을 최고로 꼽는다. 뉴욕의 우드버리 아울렛도 가보고, 포틀랜드의 아울렛도 가봤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이곳이 갑이다. 프라다, 미우미우, 구찌, 생로랑, 루부탱, 몽클레어 등 명품 브랜드도 상당히 입점해 있고, 상점 내 물건도 다양하다. 게다가 뭐니뭐니 해도 가격이 착하다. 시기를 잘 맞춰 가면 (예를 들어 독립기념일 연휴) 70% 할인된 가격의 물건도 득템할 수 있다. 우리 부모님은 미국에 오실 때 마다 팜스프링스 여행길에 이 아울렛을 들려 1년치 입을 옷을 사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은 아울렛에서 빌릴 수 있는 차량 모양의 유모차에 태웠다. 아이들만 조용히 있어줘도 쇼핑은 편해진다. 물론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만족할 만큼 쇼핑을 즐길 순 없지만, 이번에는 차량 유모차 덕에 그런대로 편하게 쇼핑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간단한 쇼핑을 마치고 호텔로 출발. 

팜스프링스를 주기적으로 찾게 되는 이유에는 호텔마다 느낌이 다르기 때문. 팜스프링스의 르네상스 호텔에는 처음 방문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일단 코로나 시국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사람이 별로 없었으므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했고, 마스크 벗은 채 편하게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거기다 스시 레스토랑이 있어서 야외에서 스시를 먹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가봤던 팜스프링스 호텔들 중에서 호텔 내부에 아시안 푸드 식당이 있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덕분에 생맥주를 마시며 스시의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팜스프링스는 사막이기 때문에 저녁 날씨는 야외에 앉아서 식사를 하기 딱 좋은 온도였다.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팜스프링스의 풍경. 야자수가 있는 곳은 언제나 낙원처럼 보인다. 글을 쓰다보니 또 여행이 가고 싶어진다. 비록 한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설날 연휴를 보낼 수는 없었지만, 미국에서 여행하며 며 보낸 2022 설날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코로나19가 끝나는 세상이 오긴 할까. 언제가 될 지 예측 조차 못하겠다. 다만 과거처럼 가족들이 다같이 모여 북적북적한 설날을 가까운 미래에 다시금 겪고 싶다. 가능하겠지(?) 희망을 잃지 않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판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