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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Oct 29. 2021

아이 둘과의 캠핑은 즐겁지 않았다

캠핑과 육아, 어울리지 않는 두 조합에 대해

집구석 캠핑(지난 브런치 글 참조: https://brunch.co.kr/@ummi/79)을 경험한 뒤, 두 아들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캠핑 가고싶은데'를 중얼거렸다. 유독 동네를 드라이브하다 보면 집 앞에 세워진 캠핑카들이 눈에 띈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외치고야 마는 것이다. 


"엄마, 우리도 캠핑!"


남편과 나는 전형적으로 몸도 마음도 편한 여행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자고로 여행이란 값비싼 호텔을 플렉스 하며, 술 마시고, 영화 한 편 보는 호사를 누리는 일이 아니던가. 호캉스가 취미인 나와 남편은 사서 고생하는 여행을 즐기지 않는다. 더군다나 우리에겐 아직은 보살핌이 왕왕 필요한 아이가 둘이나 있다. 아이들과 함께는 유럽, 뉴욕과 같은 도시 여행은 꿈도 꿀 수 없는 처지다. 자동차를 타고 1~2시간 이내에 갈 수 있고, 숙소가 깨끗하고 안락한 곳. 그런 곳들만이 지난 몇 년간 우리 가족들의 유일무이한 여행지였다.


하지만 캠핑을 하고 싶다는 두 아이의 갈망을 외면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린 나이에는 공부보다도 많은 경험을 하는 게 인생을 살아갈 자양분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캠핑도 경험적인 측면에서 어린 시절 꼭 해봐야 할 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하여 LA 인근의 유명 캠핑장을 검색해보기 시작했고, 호텔을 선호하는 나에게도 꽤나 호감으로 다가온 한 곳이 있었다. 바로 '겟어웨이' 캠핑장. 


미 전역 곳곳에 있는 프랜차이즈 캠핑장인 '겟어웨이'(https://getaway.house/)는 자연 속에 위치한 캠핑카 한 채를 빌려준다. 겟어웨이 캠핑장에서는 이른바 '바퀴달린 집'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게 된다. 인스타그램에서 겟어에위 해시태그를 검색해보니 멋진 사진들이 줄지어 나왔다. 이곳은 캠핑장인 동시에 내가 원하는 감성적인 사진도 나올 수 있는 곳이구나 싶어 고민도 않고 예약 버튼을 눌렀다. 게다가 텐트에서 잠들지 않아도 되니, 지난 번 집 마당에서 했던 텐트에서 하룻밤 경험을 피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캠핑 당일. 설레는 마음...

이라고 적으면 거짓말이려나.


아니, 처음엔 분명 설레는 마음이 앞섰다. 


예상대로 캠핑은 준비할 게 참 많았다. 고작 하룻밤 자러 가는 건데도 음식을 직접 해먹어야 하기에 출발 전 식재료 장부터 보러갔다. 텐트에서 자는 '찐캠핑'은 아니어서 천만다행이었지만, 그럼에도 기름, 고추장, 고춧가루 등 요리를 위해 최소한 필요한 준비물도 챙겨야 했다. 아이들과 함께 가는 여행이기에 아이들의 식사가 가장 큰 문제거리였다. 적어도 세끼는 캠핑장에서 먹고 올텐데, 짐을 줄일래야 줄일 수 없었다. 도착 해서 먹을 유부초밥 도시락 싸기, 아침으로 먹을 토스트 준비물, 고기 구울 준비물 등등 식재료를 싸는 것만으로도 짐의 절반 이상이 꽉 찼다. 


그뿐인가. 숙소가 산 속에 있다는 점을 고려해 두꺼운 옷도 몇 벌씩이나 충분히 챙기고, 산에서 필요할지 모르는 장비들(가령 랜턴)까지도 가방에 넣었다. 출발 준비를 하는 데만 3시간여가 소요된 것 같다. 이제 출발해볼까...? 


집에서 빅베어(Big Bear)까지는 차를 타고 달리면 2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캠핑장으로 출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탓에 피곤했던 아이들은 금세 차 안에서 잠이 들었고, 덕분에 남편과 나는 오붓한 마음으로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었다. 빅베어 지역에 가까워질 수록 말 그대로 자연친화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우리, 정말 캠핑을 하러 오긴 한 거구나'싶은 마음에 설레기도 했다. 나와 남편도 생애 첫 캠핑인지라 모든 게 신기하게만 여겨졌다. 


캠핑장에 가까워지자 인터넷이 불안정했다. 진작 캠핑장 측에서 보내줘 다운받은 지도를 보며 숙소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공기가 달랐다. 우리가 사는 동네도 공기가 딱히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산 속의 공기와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아이들은 차에서 내리자 마자 숙소를 향해 달렸다. 글을 쓰다 문득 '숙소'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퀴달린 집', '통나무집'이 더욱 적합할 듯하다. 하여튼 아이들은 우리가 하루동안 묵을 곳을 향해 냅다 달렸다. 내리막길에다 땅에는 자갈이 깔려 있어 아이들이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예삿일이 아닐 터였다. 


캠핑장 도착과 동시에 남편과 내 마음에는 불안의 그늘이 자리잡았다. 

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불안과 위협. 


과도한 걱정이라고 치부하기엔 불안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낯선 상황, 위험한 내리막길, 흥분한 아이들, 짐 풀고 요리하랴 육아하랴 몸이 10개라도 부족한 남편과 나. 자칫하다간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협을 온 몸으로 느끼며 남편과 나는 장을 봐온 식료품들을 냉장고에 넣고, 쉴 새도 없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한 아이들이 배가 고플까봐 집에서 싸온 유부초밥을 아이들에게 먹이는 와중에도 아이들을 잠시를 가만히 있지 못하고 숙소 앞 낮은 산을 오르락 내리락 했다. 생각보다도 5살, 2살 꼬맹이 아들들은 제법 산을 탈 줄 알았다. 아이들은 몇 번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다 보니 산을 타는 감을 잡은 모양이었다. 초반에는 어어- 하는 소리도 들리더니, 몇 분이 지나자 깔깔대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아이들의 산타기는 밤 늦게까지 계속 됐다. 랜턴을 들고 어두운 산길을 오르는 게 마치 동화속 영웅이 되어 모험을 떠나는 느낌을 주는 듯 했다. 첫째는 둘째에게 '가자!'를 수시로 외치며 길을 앞장 섰다. 2살 막내는 5살 형을 따라 넘어질 듯 말 듯 나름대로의 균형을 잡아가며 걸었다. 그러다 넘어지기도 일쑤. 나와 남편은 번갈아 아이들 뒤를 종종 따라다니는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얼른 돌아와!!! 빨리!!!" 


아이들을 따라 산을 오르고 있는데,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생동물이 있다는 것이었다.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야산에서 야생동물로부터 습격을 당한다면 쥐도새도 모르게 목숨을 잃지 않을까 간담이 서늘했다. 괴력을 발휘해 두 아이를 양쪽에 끌어 안고 냅다 달렸다. 숙소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구고 남편의 자초지경 설명을 들어보니, 산쪽에서 동물이 어슬렁 걸어다니는 소리가 들렸고, 남편이 유심히 쳐다보자 그 야생동물의 눈이 반짝이더라는 거다. 손전등으로 창 밖에 불을 비춰봤더니, 정말 그곳에는 사슴이 있었다. 야생 사슴은 공격성이 있어 자칫하면 아이들과 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던 상황. 



당시 난 캠핑은 다음 생에나 다시 해봐야겠다, 고 수없이 생각했다. 

숙소 값이 저렴한 것도 아니요, 캠핑을 통해 힐링을 얻는 것도 아니라면 굳이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기에. 



"연애 때 왔더라면 어땠을까?"

"좋았을걸. 한 번 경험으로는."


그래.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하여간 아이 둘과 캠핑은 아주 먼 나중을 기약하기로 한다. 


(사진으로는 아름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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