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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Jan 05. 2020

새해 시작은 해돋이, 청소와 함께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

조던 B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중 법칙 6  



12월 31일 밤 10시께.

2020년을 2시간쯤 남겨두고 신년계획을 세우던 중 새해 첫날에는 해돋이를 보러 가고, 이후 대청소를 하는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나눴다.


두가지 모두 남편이 제안했다. 남편은 지인이 새해에 일본의 후지산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극을 받은 모양이다. 우리 집 근처에도 '그리피스 천문대'가 있으니 그곳의 하이킹 트레일러를 가자고 했다. 연애 때 한번 가본 적이 있던 곳인데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상쾌함이란. 기꺼이 남편의 제안에 오케이를 날렸다.



대청소는 새해 첫날부터 대체 왜...?  

추수감사절 연휴부터 시작해서 첫째 아들 유치원 학예회, 크리스마스 방학, 내 생일파티, 연말 여행 등 한 달 내내 신나게 놀고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해야할 일들은 잔뜩 밀렸고, 집은 조금 많이 너저분해졌다. 한 해를 제대로 시작하기 위해선 집부터 깨끗해야 하지 않을까.



새해 첫날에 뭘 하고 놀까, 라는 계획을 세우기 보다는 보다 건설적이고(?) 의미있는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린 새해 첫날을 기념해 해돋이를 보러 가고, 집안 곳곳을 대청소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1월1일, 오전 5시20분 기상.

아마 새해 첫날이 1년 중 가장 일찍 일어난 하루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해돋이를 보러 가기 위해 알람이 울리자 마자 다급한 마음으로 일어나 눈을 반만 뜬 채 운동복으로 갈아 입었다. 난 올빼미형 인간인지라 밤을 새며 일을 할지 언정, 일찍 일어나서 해야할 일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새벽에 알람 소리를 들으면 머리 속으로 ‘아,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이잖아?’ ‘이따 해도 괜찮아’ 등등 여러 ‘합리화’ 과정을 거쳐 끝내 일어나지 못하는 일이 태반이다.   



하지만 해돋이 만큼은 꼭 보러 가고 싶었다. 우선 약 30년이 넘는 인생 동안 난 단 한번도 새해맞이 해돋이를 보러 간 적이 없었다. 왠지 2020년의 첫날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소원을 빌고 나면 이번 해가 별탈없이 행복하게 흘러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집 근처 그리피스 천문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이킹 장소에 도착하자 깜깜한 침묵만이 우리를 기다렸다. 한국처럼 사람들이 바글바글 할 줄 알았는데, 암흑 뿐이었다. 정상을 향해 하이킹 트레일을 걷는데, 우리의 발자국 소리와 올빼미 소리만 들렸다. 평소 ‘그것이 알고싶다’를 너무 열심히 시청했던 탓일까. “이 곳에 쥐도 누군가에 의해 새도 모르게 묻히면, 아무도 우릴 못 찾겠다…”라며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정상과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조금씩 보였다. 그런데 우습게도 대부분 한국인이었다. 이곳은 분명 미국 캘리포니아인데, 주변 사람들만 보면 꼭 아차산에 올라온 것 같았다. 미국인들은 한국인들만큼 해돋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렇게 한국인들로만 가득할 수 있을까. (조금 더 넓게 본다 해도 동양인이 80%였다)   



구글에 해돋이 시간을 검색해 보니 오전 6시58분으로 뜬다. 정상에 올라 30분쯤 기다리니, 정말 해가 떠올랐다. 구름 사이에 해가 가려져 내가 지금까지 tv로 봐오던 드라마틱한 해돋이 장면은 아니었다. 하지만…해가 떠오르는 모습에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과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아무래도 가족들의 건강을 가장 먼저 소원으로 빌게 됐다. 나이가 들고 내 가정을 꾸려나갈 수록 지켜야할 소중한 사람들이 많아져 두려움도 커지는 것 같다.   



내년에도 해돋이를 보러 또 다시 이곳에 오자고 남편과 약속했다. 잠과 추위를 이겨내고 산 정상에 올라 새해 첫날의 해를 바라보니, 마음 깊숙이 ‘감사’와 ‘삶에 대한 의지’로 가득 차올랐다. 이번 한 해를 열심히 살아보자, 내 인생 화이팅, 뭐 그런 감정들. 새로운 한 해가 왔을 뿐인데도, 마치 새로운 세상에 온 것마냥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떡국 한 그릇 거하게 끓여먹고, 식후 커피 한잔까지 마셨다. 새해 첫 날인 걸 아는지 첫째 아들도, 둘째 아들도 그날따라 말을 잘 들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첫째 아들은 새해 첫날부터 어마어마한 고집을 부리며 징징댔다. 이게 미운 3살인걸까…괴로웠지만 새해 첫 날임을 수시로 되새기며 아들에게 화내지 않고 상냥한 웃음을 띤 채 대화를 건네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기울였다.   


남편이 아들 둘을 데리고 외출을 했고, 나 혼자 남았다. 아...이 고요한 적막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이 집에는 비로소 나 혼자 뿐이다. 행복한 감정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이게 행복이지...


남편이 육아를 전담하고, 내가 청소를 도맡기로 했다.


어디서부터 해야할까. 막막함이 앞선다. 뜬금없이 고백을 하자면 나란 사람은 정리정돈과는 거리가 참 먼 사람이다. 내 한 몸만 깨끗하면 주변은 엉망진창이어도 상관없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나다. 정리 정돈 하기는 싫어한다 해도 집이 지저분한 모습은 보기 싫어하는 타입이라 과거 유학생활 중 기숙사에 살 때는 문이 달려 있지 않은 옷장에 커튼을 달아 너저분한 옷들을 가려버렸다. 내 눈에만 안 보이면 그 안에 규칙없이 난장판으로 옷이 쌓여있다 해도 괜찮다는 심보였다.   



결혼을 하고, 30대가 됐다고 본성이 달라질 리 없다. 여전히 우리 집 옷장은 집에서 가장 지저분한 곳이다. 깨끗한 성격의 소유자인 남편은 옷장의 1/3만 자신이 차지하고 2/3를 내게 줬다. 그리고 딱 자신의 자리 1/3만큼만 깨끗하게 사용한다. 나의 공간인 2/3에 대해서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뱀 허물처럼 벗어 뒀던 옷들일 개키고, 드라이 해야할 옷들을 쇼핑백에 넣고, 겨울 옷을 넣어뒀던 박스에서 코트 몇 개를 꺼내 옷걸이에 걸어둔다. 이 작업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럼에도 옷 방은 여전히 너저분하다. 남편이 보면 분명 다 버리라고 했을 것이다. 남편은 결혼 후 내가 가지고 온 옷 꾸러미에 기겁했다. 데이트할 때만 해도 내가 매일 다른 다양한 옷들을 입고 나오니 보기가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하고 보니, 나의 ‘옷 사랑’에 남편을 학을 뗀다. 주기적으로 옷을 사들고 오는 부인을 보며 남편은 괴로워했다. 연애와 결혼의 차이는 바로 이런 것일까.   



안되겠다. 옷방은 오늘 하루 만에 달라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곳을 치우려다 내 새해 첫날을 망쳐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아이들 방을 공략하자.  



첫째와 둘째의 옷을 정리하는 일은 비교적 쉬웠다. 첫째가 입던 옷 중 둘째에게 가야할 옷들을 계절별로 분류해 넣어두고, 둘째의 옷 중 작아진 옷들은 상태 좋은 옷과 나쁜 옷으로 구분했다. 상태 좋은 옷들은 친구의 태어날 아이에게 줄 예정이다. 아이들 옷을 정리하고, 버릴 옷들을 처분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옷 정리는 여기까지만...더 이상 하면 스트레스가 될 것 같았다.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을 했다. 대청소라는 단어가 민망할 만큼 딱 적당양의 청소만 했다. 하지만 개운한 마음은 들었다. 집이 분명 반질반질해져 있었다. 아이들이 집에 오면 분명 또다시 더럽혀질테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는 명언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었다. 청소의 매력은 이런게 아닐까. 이번 해에는 마음이 복잡할 때 집부터 정리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다. 과연- 잘 지켜질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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