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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Jan 12. 2020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워킹맘의 미련에 대해

지난해 가장 재미있게 읽은 에세이집은 고르라면 주저하지 않고 김하나, 황선우 작가가 쓴 <여자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택하겠다. 이 책은 결혼하지 않은 40대 싱글 여성 두 명의 동거이야기를 맛갈나게 담고 있다. 작가들은 함께 아파트를 얻어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유지하되, 외롭지는 않은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다.



퇴근 후 누군가가 차려준 밥을 함께 먹고, 술 한 잔도 기울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삶, 함께 애완견도 공동으로 키우는 삶, 그러나 서로에게 책임져야 할 일들은 비교적 많지 않은 삶.



친구와 함께 동거하며 살아가는 삶이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유학생활 중 기숙사에 살며 친구와 함께 지내봤으니,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 보긴 했다. 하지만 그건 단지 학생 때 해볼 수 있는 일이었을 뿐이지 30대, 40대의 내가 그렇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은 못해봤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문득 자문하게 됐다. 어쩜 난 이런 식의 삶을 살아야 하는 부류의 인간은 아니었을까, 하고.  






 

바쁘고 정신 없는 일상 속에서 몸도 마음도 지칠 때면, ‘어쩜 내가 살았었을지도 몰랐을’ 저쪽 세상에 대한 미련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 워킹맘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같은 경우에는 싱글 여성으로서 이 시기를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끊임없이 상상해보게 된다.   



퇴근 후 육아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먹고 싶은 식사를 하고, 보고 싶은 티비 프로그램을 보다, 운동도 하고, 목욕한 후 산뜻한 몸으로 침대 위에 올라가 책을 읽으며 스르륵 잠드는 그런 일상. 와,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졌다. 누군가는 그런 일상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에 신기하고 부러운 감정이 들었다. 그런 삶도 어딘가에는 존재하긴 하겠구나…  



어렸을 적부터 내 꿈은 ‘커리어 우먼’이었다. 확실한 이유나 동기같은 건 없었지만, 그냥 그랬다. 자기 분야에서 멋지게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언제나 날 설레게 했다.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들을 낳아 키우는 삶은…꿈꾸거나 동경하는 삶은 아니었다. 그저 살다 보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따라올 삶 정도로 치부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 친구 집에서 인형놀이를 하는데, 가정주부 역할을 맡은 내가 제법 흉내를 잘 냈던 모양인지, 친구가 대뜸 말했다. “와, 너는 나중에 집에서 살림을 정말 잘하겠다.” 그 말을 듣고 갑자기 분노가 차오른 나는 들고 있던 인형을 던지고 친구와 대판 싸운 후 집에 돌아왔다. 그게 그렇게 싸울 일이었나 싶지만 고작 12살이었던 내게 ‘집에서 살림을 잘하겠다’는 건 굉장한 모욕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난 밖에서 일을 해야할 사람인데, 살림을 잘하겠다니, 뭐 이런 식의 생각.   



20대의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외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고군분투 하는 삶을 살았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성적을 받고, 학기 중이든 방학이든 더 많은 대외활동을 하기 위해 동에 번쩍 서해 번쩍 했었다. 그렇게 사는 것만이 의미있다고 생각했고, 꿈을 향해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이라 믿었다.   



그러던 내가 인생의 장난인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3년간의 연애 끝에 27살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신혼 4개월만에 첫 아이가 우리에게 왔다. 계획하지 않은 임신이었다. 그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이라니…내게 아이라니…얼마나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아이라니…   



스물 일곱에 결혼하려던 내게 고모는 말했었다.  


“너 결혼하면 애도 낳아야 하고, 인생이 참 힘들어진단다. 좀 더 늦게 하지 그래.”  


“에이, 고모. 나 애는 늦게 낳을거야. 걱정하지마.”


“어디 그게 네 맘대로 되는 줄 아니…”  



고모 말이 맞았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결혼 후 내 삶은 다이나믹 하게 흘러갔다. 말 그대로 미친 속도로 삶이 재생됐다. 첫 아이 출산, 둘째 아이 출산…워킹맘의 삶.  







아이 둘을 키우며 일을 하고 있는 지금. 내게 여유시간이란 거의 없다.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 취재하러 가는 시간이 사실 자유시간이라면 자유시간. 일할 때야말로 나로서 살 수 있는 시간임을 부정할 수 없다. 사실 하고싶은 일이 너무나 많다. 더 열심히 일에만 매진하고 싶기도 하고, 다양한 취미 생활 및 운동, 그리고 친구들과 시간도 보내고 싶다. 이 모든 하고싶은 일이 육아 앞에서 무너질 수 밖에 없지만.



퇴근 후 육아를 시작해야 하고, 주말이면 풀육아를 가동해야 하는 나로서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서 나오는 저자들의 삶이 꿈처럼 느껴졌다. 부러웠고…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저자들처럼 살 수 있었을까. 온전히 내 일을 하고, 여가를 즐기며 커리어의 발전을 위해 달려가는 그런 삶.   



내겐 주어지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겐 꼭 주어지길 바라는 삶의 양식이다. 이 글을 ‘그럼에도 결혼하면 더 좋아!’라고 끝내고 싶진 않다. 결혼을 하지 않은 이가 읽는다면 꼭 결혼 전에 자신이 어떤 타입의 사람인지를 곰곰이 되짚어 보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난 비록 그러지 못했지만.   



뭐, 지금의 내 삶이 불행하다는 건 아니다. 퍽이나 만족하며 남편과 두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고있다. 지금의 상황에서 육아도 커리어도 포기하지 않는 최선을 도모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단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질문을 때때로 하게 된다는 것. 상상은 내 자유니까.   



글을 쓰며, 다시금 상상해보게 된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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