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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Jan 20. 2020

지독한 독감을 앓고난 후 깨달은 것들

일상의 소중함-커피 한 잔이 그토록 간절할 줄이야

3일째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지난주 금요일부터 편도염인가 싶을 만큼 목이 부은게 느껴졌는데, 육아-일로 바쁜 일상 속에서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자연치유의 길을 택했다가 목소리를 잃고야 말았다. 말 그대로 정말이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걸 깨닫고 얼마나 당황했던지. 뭐라도 말하려고 하면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출근해서도 동료들과 속삭이며 대화하고, 취재를 나가선 입 모양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실내 취재의 경우, 전화가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취재원들과는 문자나 이메일을 통한 취재만 가능했다. 전화가 오면 두려워졌다.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의 마음을 백번 이해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눈 앞에 두고 얼마나 답답했을까. 휴-



주말 당직 취재를 마치고 병원에 들려 항생제를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울쩍했다. 별명이 '튼튼이'였을 만큼 1년에 감기 한 번 걸릴까 말까 하던 나였는데, 올해 1월은 매주 주말마다 열이 나거나 지금처럼 목이 부어 올라 약을 먹어야 했다. 두 번의 출산으로 내 몸은 '튼튼이'는 커녕 '나약이'가 되어 버렸다.





아프고 나니 깨달은 건 '일상의 소중함'이다.


먼저 평소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새삼 절절하게 느꼈다. 몸이 건강하면 기본적으로 정신적으로도 건강한 것 같다. 상쾌하게 하루를 맞이해 회사에 출근하고, 동료들이나 취재원들과 웃으며 대화할 수 있고, 맑은 정신으로 기사를 쓸 수도 있다.


또 등하원 길에 차 안에서 아이와 시시콜콜한 주제들로 대화나눌 수도 있고, 잠들기 전 동화책도 읽어줄 수 있다. 한국에 있는 엄마, 아빠, 친구들과 보이스톡도 할 수 있고 말이다. 또 잠들기 전 남편과 하루에 있었던 일들, 느꼈던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도 있다.

점심시간 후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일명 아아.

무엇보다도 아프고 나서 가장 간절한 것은 다름아닌 '커피'였다. 직장인에게 커피의 의미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출근길 커피 한 잔, 점심시간 후 커피 한 잔은 그야말로 고단한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힘의 원천이다.



아침 출근길에 꼭 들리는 스타벅스 드라이브 쓰루

출근 길에 스타벅스 드라이브 쓰루에 들려 난 아메리카노(때론 라떼) 한 잔, 아들은 버터 크루아상을 사는 일은 반년째 지켜온 일이다. 목이 아프고 나니 아메리카노는 '티' 종류로 대체되어야만 했다. 하...커피 향기가 너무나 그리웠다. 감기는 내 소중한 커피 타임을 앗아갔다.


친구부부 집에 초대돼 가진 와인 타임. 난 즐길 수 없었다.

그 뿐인가. 하필 목소리가 안 나오는 이번 주말에는 10년지기 친구 가족 집에 초대돼 차로 1시간 반이나 걸리는 오렌지 카운티 지역으로 갔다. 친구 부부는 스시와 와인 안주를 잔뜩 준비해 놓았다. 이 시간을 지난 연말부터 고대해왔는데, 난 와인 한 모금 입에 대지 못했다. 친구와 수다를 떨 수도 없었고. 친구에게 입모양으로 의사를 전달하자 친구는 차라리 카톡으로 이야기하는 게 편하겠다고 말했다. 맞다. 차라리 채팅이 더 편할 지경이다.




몸이 아프니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들을 하나 둘씩 즐길 수 없게 됐고, 행복한 일들이 줄어드니 우울한 감정도 찾아왔다. 삶에 대한 긍정의 강도가 확 낮아졌다. 아직 새해 첫 달인 1월이건만...새해를 맞이하며 펄펄 끌어올랐던 삶을 향한 나만의 비전과 희망은 온데 간데 없어진 것 같았다. '인생 뭐 있나...' 싶고.



역시나 건강이 최고다. 몸이 건강해야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고, 그래야지만이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차오른다. 내게 평소 주어졌던 일상들이 감사 그 자체였다. 이번 감기만 나으면, 몸 관리를 제대로 해봐야겠다. 좋은 음식 먹고, 운동도 열심히, 수면도 충분히. 알면서도 잘 못지키는 것들.



일단 무엇보다도 수다를 실컷- 떨고싶다. 하고싶은 말이 너무나 많단 말이다...

동료들, 취재원들, 친구들, 가족들과 수다 한 판 떨어봐야지.




 


해당 글을 작성한지 하루 뒤, 목 상태가 약간 호전돼 아침에 나도 모르게 말을 내뱉곤 "와" 감탄했다.

남편도 "지금 너 말을 했어!"라고 신기한 듯 소리쳤다. 목소리가 나온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감사한 일이었다니. 말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내 입으로 내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음에 기쁘다.


내게 주어진 일상들이 감사하다. 얼른 나아서 커피 한 잔도 쭉- 들이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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