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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Feb 03. 2020

회사를 언제 그만두면 좋을까

옆자리 선배의 이직을 지켜보며

지난 금요일 회사 책상에 앉아 구글에 ‘사직서 양식’을 검색했다. 수많은 검색결과 중 제법 보기 좋은 사직서 양식 하나를 골라 프린트해 부장 선배에게 가져다 줬다. 그날은 선배가 회사에서 보낸 지난 10 년이라는 세월에 공식적으로 마침표를 찍는 날이다. 2주 전 회사에 노티스는 줬지만 사직서는 제출하지 않아, 마지막날에서야 선배는 사직서를 프린트했다.



선배는 스스로 사직서를 검색해 프린트하기는 뭔가 멋쩍었는지 옆자리에 앉아있는 내게 ‘사직서 양식을 찾기가 어렵네’라며 간접적인 sos를 청했고, 난 그에 응답했다.  



선배를 대신해 인터넷 검색창에 사직서를 타이핑하면서, 훗날 내가 쓰게 될 사직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 언제가 될지는 당장은 알 수 없지만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진 요즘 나도 언젠가는 쓰게 될 사직서였다.



회사를 그만두는 옆자리 선배, 이른바 부장선배는 그날 하루 옆구리만 쿡 찔러도 울듯한 표정이었다. 위층, 아래층을 오가며 10년간 알고 지냈던 모든 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마음이 좋을리 없었다. 이윽고 부국장님 방에 들어가 마지막 인사를 건넬 때 부국장님께서 안경을 벗으며 눈물을 소매로 훔쳤고, 선배 또한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고…선배는 말했다.   





내가 회사에 사직서를 건네게 되는 날은 언제가 될까.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다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확신은 있다.   



이직에 대한 나만의 기준은 이렇다. 먼저 경력을 인정받아 경력직으로 이동이 가능할 만큼의 기간을 채우고 싶다. 선배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대개 3년에서 5년 사이를 이직하기 가장 좋은 시기로 꼽더라. 그래서 나 역시 첫 직장에서 적어도 3년 이상은 묵묵히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게 됐다.  



만 2년간 회사를 다닌 지금, 아직 나는 회사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직도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더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만약 지금 이 상태에서 회사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면 전공과목을 다 듣지 못하고 졸업하는 것마냥 찝찝한 기분이 들 것 같다.   



달리 말하자면 ‘이곳에서 더 배울 것이 없다’는 생각에 다다르면 이직을 전적으로 고려할 예정이다. 내가 현재 하는 일이 ‘복사-붙여넣기’ 마냥 매일 반복되기만 하고, 향후 발전의 여지 조차 보이지 않다면 그때는 과감하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 할 때라고 믿는다.  



물론 매너리즘과는 별개의 문제다. 일을 하다 보면 때때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매너리즘에 빠지고,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에 대해 허무함이 밀려올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잠시의 매너리즘일 뿐, 그만둬야 할 타이밍은 아니다. 매너리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매너리즘이 반년 가까이 계속된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직은 ‘아름다운 이별’과 함께 하고 싶다. 적어도 화가 나는 어느 순간에 나의 자존심을 챙기기 위해 버럭하는 마음으로 사직서를 제출해 회사를 나오고 싶지 않다. 아름다운 이별이 있겠냐만은, 그럼에도 아름다운 이별을 회사와 해보고 싶다.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에 누군가 ‘아 저 친구, 참 이곳에서 열심히 일 했었지’라는 평가를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지난해 4개월간의 출산휴가를 앞두고 휴가에 들어가기 전날, 회사 직원들 모두에게 한명 한명 인사를 드리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날 밤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꼭 회사를 영영 그만둔 느낌이 들었다. 묘한 서운함이 들었다. 회사의 동료들을 영영 못 보게 된다고 생각하니, 회사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이 찰나의 순간처럼 여겨졌다. 꼭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물론 다시 볼 수 있는 사람들인 걸 알지만 회사에 다닐 때처럼 매일 부대끼며 볼 수는 없으니까, 그게 가장 서운한 것 같다. 학교 졸업식 때 느끼던 그런 감정이랄까.



하여튼 출산휴가 덕분에 사직서를 낼 때의 기분이 어떨지 약간이나마 선경험을 해봤다. 결론은 후회없는 직장생활을 하자는 것.



일요일 밤. 월요일 출근을 앞두고 월요병이 돋으려 하지만, 그럼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좋아하는 드라마 한 편 시청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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