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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Feb 17. 2020

미국 영주권을 받았다

영주권을 받고 난 후 좋지만은 않았던 이유

영주권: 일정한 자격을 갖춘 외국인에게 주는, 그 나라에서 영주할 수 있는 권리.  


지난주 집으로 ‘영주권’이 배달됐다. 영주권 인터뷰를 보고 난 지 꼭 2주일 만이었다. 이미 합법적인 비자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주권이 나오자 마침내 미국이란 나라에 조금 더 깊게 소속된 느낌이 들었다. 주변에 영주권이 나왔다는 소식을 전하자 ‘축하한다’며 영주권(green card)이 나오면 일명 ‘그린푸드’로 일컬어 지는 축하 턱을 쏴야 한다고도 했다. 나는 기꺼이 기분 좋게 축하 턱을 쏘겠노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이게 과연 축하 받을 일인가’에 대한 의문만 쌓여갔다. 미국에서 시민권, 영주권이 아닌 다른 비자로 머무는 사람들의 경우, 과반수는 영주권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영주권을 받아야 언젠가 미국에서 쫓겨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확실성의 거품을 거둬낼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 경우 취업 영주권 신청의 최초 시작일은 지난 2018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영주권을 스폰해 주기로 했고, 회사 담당 변호사를 만났다. 이후 최저임금(prevailing wage) 측정, 광고, LC 신청, I-140, I-485 신청을 거쳐 2020년 1월 말 영주권 인터뷰를 봤다. 그리고 2주 뒤 영주권이 집으로 배달됐다.



요약하자면 나는 회사의 스폰을 받아 취업 영주권을 남편(배우자 신분)과 함께 동반 신청했고, 영주권을 받기까지 총 1년6개월이 소요됐다.   



영주권의 소유 여부가 현재 우리 부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영주권이 나온 날도 우린 비교적 덤덤하게 ‘아 드디어 나올 게 나왔군’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래도 어차피 미국에서 사는 거 영주권이 있으면 더 편하지 않겠는가, 싶기도 했다.   



동시에 두려운 마음이 압도했다. 영주권을 받을 생각이 전혀 없던 우리가 결국 영주권을 받았고, 이러다 시민권까지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피어 올랐다. 가까운 미래에 모국으로 돌아가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품고있는 내게 영주권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커다란 장벽 하나가 들어선 기분이 들게 했다.   



한국에서 살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부모님 때문이다. 타지에 살다 보니 1년에 부모님과 실제로 얼굴을 보고 사는 날은 한달 안팎이다. 특히나 20대 내내 유학을 했던 나는 10대 이후 부모님과 오래 살아본 적이 없다. 결혼하기 전 1년간 부모님과 함께 살며 어찌나 행복했는지. 내 또래 친구들은 독립을 꿈꾸기도 하던데, 유학시절 동안 혼자 사는 게 참 싫었던 나는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삶이 훨씬 풍요롭게 느껴졌다.



우리 집은 유전적으로 수다스러운 집안이라 밤만 되면 가족들은 식탁에 모여 앉아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주고 받았다. 그날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대화를 했는지,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등등 서로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일은 하루를 기분 좋게 끝마칠 수 있는 하나의 의식처럼 자리잡았다. 식상하지만 말 그대로, 기분이 좋은 날의 대화는 기쁨을 두 배 이상으로 늘렸는가 하면, 기분이 슬픈 날의 대화는 아주 큰 위안이 되어 슬픔을 반으로 줄여줬다.   



타지에 살면서 가장 슬픈 일은 점차 죽음과 가까워지는 부모님을 가까이에서 자주 만나뵐 수 없는 일이라고, 난 늘 생각한다. 그래서 영주권을 받은 날, 기뻤던 동시에 시큰한 감정도 올라왔다.



회사 선배는 영주권을 받은 날 눈물이 났다고 했다. 기쁨의 눈물은 아니었다. '영주권까지 받은 걸 보니, 내가 미국에 살 운명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해 눈물이 난 것이다.



타지에 사는 사람들은 자의적인 선택으로 그곳에 거주하기도 하지만, 때론 '운명'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그곳까지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기도 하다. 난 내가 현재 미국 LA에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일이 피할 수 없는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 올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졌고, 난 차마 외면하지 못했다. 눈 앞에 주어진 기회를 매몰차게 발로 차버리는 일은 뭐랄까, 운명을 거스르는 행동처럼 느껴졌다. 한국을 그토록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있는 이유를 난 이렇게 밖에는 설명할 수 없겠다.



이왕 운명을 받아들인 것, 이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보자고 되뇌여본다. 내가 유학생활을 마치고도 다시 이곳에 돌아온 데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증명하는 삶을 살아보자. 영주권까지 받은 것도 다 운명 아니겠는가. LA에 거주하는 운명론자의 어처구니없는 횡설수설인 듯 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일만이 언제나 최선이기에 이런 식의 자기 합리화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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