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ris Seok Feb 23. 2020

워킹맘 종족 (그 끈끈한 유대관계에 대해)

눈빛만 봐도 알 수가 있어

“아들이 두 명 있어요.”


최근 회사에 새로 들어오신 경력기자님과 이것 저것 이야기를 나누다 아들 둘의 존재를 밝혔다. 순간 기자님은 놀란 얼굴로 날 쳐다봤다. 비교적 일찍 결혼(27살)해 출산을 했기(첫째: 28살, 둘째: 31살) 때문에 아들들의 존재를 밝힐 때 으레 받아오던 익숙한 반응이었다.


기자님은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며 ‘너가 어떤 삶을 사는지 다 알고있다. 얼마나 힘드니!’라는 눈빛으로 나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그때 우리는 서로가 같은 종족임을 깨달았다. 이른바 ‘워킹맘’이라는 종족.


사회생활을 하다 우연히 워킹맘들을 만나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초면에도 서로가 워킹맘임을 알고 나면, 아주 짧은 순간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유대가 생겨난다. 사랑에 빠진 남녀가 한 눈에 반해 서로를 알아보 듯, 워킹맘들은 한 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의 힘듦을 공감한다.



워킹맘들 사이에는 공유할 이야기 거리가 무궁무진 하다.



가령,


‘자녀가 몇 살인가요?’

‘자녀가 몇 명인가요?’

‘형제인가요, 자매인가요?”

‘모유수유 하셨어요?’

‘밥은 잘 먹나요?’

‘통잠은 언제부터 잤나요?’

‘자녀 드롭-픽업(등하원)은 누가하세요?’

‘학교는 어디 다녀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말잇기 마냥 질문과 대답은 티키타카 공을 패스하 듯 아주 매끈하게 이어진다. 워킹맘끼리 통하는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워킹맘들은 서로를 깊게 동정하는 측은지심의 마음을 품곤 한다.



워킹맘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공통점은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그럼에도 최대치를 끌어내기 위해 얼마나 애쓰며, 견디는 삶을 살아가는지 워킹맘들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최근 특별했던 그녀와의 만남이 기억에 남는다.



캘리포니아주 예비선거가 치러지는 3월3일을 한달 여 앞둔 2월은 정치부 기자에게 가장 바쁜 시기다. 지난 한 달간 수십 명에 달하는 캘리포니아주 정치인들을 만났는데, 그중 한 분은 인터뷰 장소에 두 명의 보좌관을 데리고 나왔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보좌관 두 명 중 한 명이 해당 정치인의 부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거에 출마하는 남편을 곁에서 지지하기 위해 최근 몇달 간 선거운동을 함께 다닌다고 했다.



그녀는 아들 두 명의 엄마였고, 기자였다. 그 공통점 하나 만으로도 인터뷰 공간의 공기가 미세하게 바뀐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와 나는 대화를 이어갔다. 기자라는 불규칙한 스케줄을 가진 직업의 특성 때문에 아이들을 돌보기가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 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의 아이 두 명은 이미 대학생이 되어 모국인 멕시코에 거주 중이라고 했다.



그 날 그녀와 나눴던 대화 중 특히나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이것만은 잊지 말아요. 모든 순간은 단 한 번 뿐이에요. 아이들의 오늘 모습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그 사실을 기억하고 매 순간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세요. 정말 소중한 시간들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띵했다. 그녀와 나 사이에 찌리릿-하는 무언가가 오갔다. 그녀의 눈에도 내 눈에도 살짝 눈물이 고였다. 


맞아요. 그 말이 맞아요… 너무나 당연해서 잊고있었던 사실을 그녀 덕분에 자각하게 됐다. 아이들의 지금 모습은 단 한 번 뿐… 퇴근 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뽀뽀하고, 안아줘야 한다.



최근 한 달간 바쁜 스케줄에 몸살까지 겹쳐 머릿속에는 육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했었다. 나는 왜 친정부모님도 없는 낯선 타지에서, 아이를 두 명이나 낳아서, 이렇게 끙끙대며 사는 걸까. 조금 더 일에 매진하고, 여행도 다니며, 여유로운 삶을 꿈꿨었는데…육아는 벅찬 일이다…라는 생각들.


그런데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내 사랑하는 아들들의 모든 순간 순간이 얼마나 귀중하고, 또 귀중한 지를 새삼 깨달았다. 첫째의 경우만 봐도 언제 신생아였던 아들이 유치원을 다니고, 쫑알쫑알 말을 늘어놓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아이들은 참 금세도 컸다. 일상에 치여 살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은 두 뼘 세 뼘씩 성장해 날 놀라게 했다.


총격, 살인, 차 사고 등 일상 속에서 사건 사고에 대한 기사를 많이 접하고, 취재하고, 내가 기사를 작성하다 보니 죽음에 대해 무감해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가 오늘 이런 일을 당해 죽는다면?’이라는 가정을 해보게 되기도 한다. 만약 그런 불의의 사고가 생긴다면 가장 후회 되고 아쉬운 일은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더 많은 사랑을 주지 못하고, 늘 바쁜 엄마였던 사실일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해준 조언대로 매일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사랑해주자고 다짐해본다. 비록 일을 포기하고 아이들만 돌보는 엄마가 되어줄 수는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후회없이 사랑해주자고 생각한다. 유독 육아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화가 많아지고, 엄살이 심한 엄마라서 미안하지만, 그럼에도 아들들이 엄마와 보낸 다채로운 추억들로 유년시절을 기억해준다면 고맙겠다.



그녀와 만난 날, 다시금 느꼈다. 워킹맘들 사이에는 찐한 유대관계가 있다.

그건 인종도 나이도 뛰어넘을 만큼 강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 영주권을 받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