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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May 01. 2020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 덕후입니다만

타인의 청춘을 대리경험 하다

갑작스럽게 고백하자면 난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 덕후다. 지금까지 즐겨본 연애 프로그램은 수도 없다. 십대 시절 봤던 <장미의 전쟁>부터 <더 로맨틱>, <짝>, <하트시그널> 등 수많은 연애 프로그램을 즐겨봤다. 영상을 통해 타인의 연애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감정이 나에게도 그대로 전달돼 꽁냥 꽁냥 해지는데, 그 기분이 너무나 좋다.   



아무래도 연애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점은 ‘대리만족’이 아닐까 싶다. 내가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썸과 연애의 경험은 한정되어 있고, 때때로 내 기대보다 무미건조할 때도 있었으니까. 타인의 경험을 통해서라도 연애 판타지를 채워 넣고 싶은 것이다. 마치 순정만화, 로맨틱 영화를 보듯이.  



무엇보다 결혼 후 ‘기혼녀’이자 ‘엄마’의 정체성을 가진 이후로는 연애 프로그램 시청이 더욱더 간절해졌다. 난 이제 죽었다 깨나 20대에 느껴봤던 연애감정을 느낄 수 없을 테니까. ‘남편과 연애하는 것처럼 살수 있지 않냐’고 누군가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아이 두 명을 키우는 우리 부부는 단 둘이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조차 어렵다. 지금이라도 남편과 단 둘이 영화관을 간다거나, 분위기 좋은 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아니 그냥 단 둘이서 시간을 보낼 수만 있다면 물론 결혼 후에도 연애감정은 가능하겠지만.



때문에 지금의 상황에서 연애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일은 남편과의 연애시절을 되새겨보게도 해주고, 현재의 불만족한 감정을 위로해주기도 한다. 최근 방영되는 <하트시그널3>도 재미나게 시청하고 있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관찰자의 시점에서 보는 일은 나에게 ‘청춘’의 감정을 선물해준다. 20대의 반짝이는 그들을 보며, ‘아,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보고만 있어도 예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청춘은 정말이지 보고만 있어도 아름답다. 아직 덜 익은 그들의 미숙함, 부끄러움, 무지함 등 모든 게 사랑스럽다. 딱 그 시절에만 가져볼 수 있는 것. 서로를 마음껏 상상하고, 갈망하는 일,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달달한 순간이 아닐까.   



김연수 작가의 저서 <시절일기>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사랑은 젊음을 닮아 있다. 더이상 젊은이가 아닐 때, 우리는 비로소 젊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래서 젊음은 젊음을 모른다.사랑도 그렇다. 무지할 때에만 우리는 깊이 사랑할 수 있다.” p.112


 

결혼 후 신혼 때만 해도 난 여전히 ‘청춘’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내 나이가 20대이기도 했거니와 결혼 전과 후의 삶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기혼녀가 된 이후에도 남편과 데이트를 즐기며,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고, 친구들과 결혼 전처럼 자주 만났다.  



하지만 인생은 출산 후로 달라졌다. 여자의 인생은 출산 전후로 나뉜다는말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아이를 임신한 순간부터 그 좋아하던 술, 커피, 네일아트도 잠시 멈춰야 했고, 출산 후에는 내 시간이 아예 사라졌다. 나만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될 줄이야 과거에는 상상해보지도 못했다.   



엄마가 된 이후에도 난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하고 싶었고, 세상을 마음껏 여행하고 싶었다. 말하자면 완벽하게 자유롭고 싶었다. 하지만 더이상 그런 삶은 내게 올 수 없었고(50대쯤 가능하려나), 난 현실을 받아들였다. 내 운명을 사랑하기로 했다.   



이제 난 내가 더이상 청춘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인생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난 인생의 1막을 끝낸 뒤 2막 또는 3막의 길 위를 걷고 있는 것이다. 난 이전의 나처럼 사소한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아줌마가 됐다. 스스로 요즘의 나를 되돌아보면 어딘가 억척스러워졌다고 해야하나…괜히 그런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오늘 하고 싶은 말의 요지는 연애 프로그램을 보는 일은 단순 남의 연애사를 구경하는 일이 아닌 누군가의 청춘을 대리경험해보는 일이라는 것. 그러니…다들 한 번쯤 <하트시그널> 시청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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