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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Dec 30. 2021

'엄마는 아이돌'을 보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

유튜브 알고리즘에 뜬 영상, '엄마는 아이돌'에 등장한 선예 썸네일을 보자 저절로 손길이 갔다. 원더걸스의 선예,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원더걸스의 '텔미'와 '노바디'의 음악은 나의 20대 초반을 바로 소환하는 노래. 원더걸스의 음악을 들으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친구와 함께 노바디 춤을 배우기 위해 댄스연습실에도 다니고 했던 터라 음악만 들으면 몸이 움직인다. 나만 그럴리는 없다. 텔미, 노바디 춤 한 번 춰보지 않은 한국인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엄마는 아이돌'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알게됐다. 엄마가 된 전직 아이돌들이 출연해 노래와 춤을 추고, 평가를 받는 프로그램. 선예를 비롯해 애프터스쿨의 가희, 쥬얼리의 박정아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자 아이돌이 출연한다.



그들이 오랜만에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있다 보니 어느새 눈물이 줄줄 흘렀다. 한 명, 한 명의 무대를 찾아보며 다음날 눈이 부을 정도로 펑펑 울었다.


뭐가 그렇게 슬펐던 걸까.




'엄마' 역할에 충실하느라 저리 빛나는 재능을 꾹꾹 눌러담은 그들의 지난 날들이 애잔해서 눈물이 났다. 가희의 무대를 본 홍진경은 "저 정도 끼를 누르고 살면 사람이 아프다"고 평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정말 누르고 살 수 없는 끼인데, 어찌 엄마로만 살아왔던 걸까. 감히 무대 위를 넘볼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타인의 무대도 보지 못하고 살았다는 그녀.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마음의 동요했다.


어느날 친구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친구는 그렇게 힘든데, 워킹맘으로 사는 이유를 물었다.


"난 나 자신으로 살고 싶어."


"전업주부도 나 자신의 삶을 사는 거야."


머리를 띵 맞은 듯 했다.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전업맘으로서의 삶도 온전한 '나 자신'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가정을 돌보고,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 그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런데,


사실은 머리로는 이해가 됐는데, 나라는 사람 자체는 엄마로서의 삶을 통해 살아있는 나를 느끼지는 못하는  같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는  사실이지만 엄마로서의 나는 왠지 맞지 옷을 입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육아 후에는 헛헛한 느낌이 난다고 해야 하나. 24시간 내내 육아를 치러야했던 아들의 신생아 시절에는, 내가 나를 잃고있다는 느낌에 괴롭기까지 했다.


어쩌면 당연한 게 엄마로서의 삶을 고작 몇 년 살았을 뿐이다.


27년간 '나'로서만 살다가, 엄마라는 명함이 주어졌다고 바로 사람이 탈바꿈되지는 않는다. 나는 본래의 나, 나의 삶을 사랑했다. 무언가에 몰입하고, 열심히 노력한 댓가 끝에 얻는 성취감을 사랑했다. 아브라함 매슬로의 '자아실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5단계 욕구 중 자아실현 욕구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자아실현이란 인간의 모든 능력을 최대한 개발과 사용하는 것, 즉 인간의 모든 소질과 재능의 발휘라고 정의될 수 있다.


나는 육아를 하면서 내가 가진 모든 소질과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에 나를 잃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 요리를 하고, 빨래를 하고, 놀아주는 과정에서 나의 일부가 소멸되고 있다는 감각을 지우기가 힘들다. 집안일과 육아는 내 재능 밖의 영역이다. 게다가 관심도 없고, 잘하고자 하는 욕구도 떨어진다. 때문에 집안일과 요리를 하고 나면 스스로의 효능감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진다. '아, 이것밖에 못하나?'


그래서 그렇게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저 빛나는 재능을 누르고 엄마로서만 살았던 출연자들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했다.


아이돌이 직업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워킹맘을 택할 수도 없는 위치였다. 아이돌은 어리고 예쁘고 신비로워야 하니까, 엄마가 된 그들은 아이돌을 유지할 수 없었다. 참 잔인한 세계다. '엄마는 아이돌'이라는 프로에 나와서 다시 이전처럼 노래를 하고 춤을 추지만, 그들이 언제까지 아이돌로서의 삶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번이 인생의 한 번뿐인 이벤트로 그들의 마지막 무대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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