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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Mar 08. 2022

집에 놀이터를 설치했다

전원주택 후로 이사오고서 좋은 점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자신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

(이전 글 참조: https://brunch.co.kr/@ummi/55)


나에게는 서재가, 남편에게는 영화관이, 아이들에게는 뛰어놀 수 있는 정원이 생겼다.


정원은 BBQ를 구워먹고, 와인을 마시는 어른들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공간을 사용하는 비율로 따져볼 때 아이들의 공간이라고 정의하는 게 더욱 합당할 듯 하다. 아이들은 여름이면 튜브 놀이터, 수영장을 만들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원에서 논다. 그런데 LA에서 '여름'이란 계절은 1년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말하자면 정원은 아이들의 것이나 다름없다.


남편과 나는 이왕 아이들이 정원에서 노는 거, 제대로 놀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들의 파라다이스를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해야하나.


동네 산책을 하다 보면 가끔씩 정원에 놀이터가 있는 경우를 심심찮게 구경할 수 있었는데, 그럴 때면 남편과 나는 '우리도 한 번 놀이터를 주문해볼까'하며 아마존 검색창을 뒤적이곤 했다. 그러다 어느날 급발진의 대가인 남편은 아마존에서 놀이터를 구매하고야 말았다. 세상에나.


놀이터는 그저 장난감을 사주듯 아이들에게 쉽게 사줄 수 있는 개념의 물건은 아니다. 일단 부피가 커도 너무 크다. 설치 하는 것도 큰 일인데다, 나중에 아이들이 놀이터에 관심이 사라졌을 때 놀이터는 처치곤란의 아이템으로 전락할 게 뻔하다. 나중에 이 집을 되팔 때까지 놀이터는 우리집 정원에서 볼썽사나운 존재를 뽐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욕구가  모든 '놀이터를 사지 말아야  이유'들을 제쳤다. 



아마존에서 1,400달러에 달하는 놀이터를 주문했다.

주문하면 끝인가?

전혀 아니다.


조립이라는 커다란 관문이 남아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가구를 구입할 때도, 조립은 개인의 몫인 경우가 많다. 대개 완성품이 배달되는 한국과는 천차만별이다. 남편과 나는 우리 스스로 도저히 놀이터 조립을 할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구매후기에는 비전문가가 조립할 경우 14시간이 소요된다고 쓰여 있었다. 풀타임으로 일하는 우리가 14시간을 들여 놀이터를 만들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게다가 14시간이 될지 20시간이 될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인터넷을 통해 놀이터 조립 전문이라는 2인 1조 팀을 '놀이터 완성'을 조건으로 600달러에 딜을 했다. 이들은 놀이터만 전문으로 조립을 하기 위해 LA 근교 지역에 출장을 다니고 있었다. 며칠 뒤, 조립을 해주기 위해 자칭 전문가가 집에 도착했다. 오전 10시에 우리 집에 도착한 이들은 밤 9시가 돼서야 놀이터를 완성하고 떠날 수 있었다. 놀이터를 조립하는데만 장장 11시간이 걸린 것이다. 전문가가 하루 종일 끙끙대며 11시간만에 만든 놀이터라니. 남편과 나는 우리가 조립을 도전하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놀이터가 완성된 날, 아이들은 밤 11시까지 잠들지 못했다. 놀이터에서 뛰어 노느라. 마스크를 벗고 놀이터에서 노는게 얼마만인가. 막내 아들 2년 인생만에 처음있는 경험일테다. 형제만의 놀이터라니, 신이나 뛰어나는 두 아들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여러모로 행복한 결과물이다.


우리 집 정원에 놀이터가 생긴 지 2주 정도가 지난 지금, 아직도 아이들은 집 놀이터를 사랑한다. 언제까지 아이들이 집 놀이터에 질리지 않고, 즐겁게 놀아줄지는 모르겠다. 다만 아이들이 먼 훗날 자신들의 유년시절을 떠올릴 때 기억의 일부분에 '집 놀이터'가 있기를. 그 생각을 떠올리며 잠시 미소지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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