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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Nov 08. 2022

엘레베이터에 갇혔다


엘레베이터에 갇혔다. 

말 그대로 갇혔다. 


약 5분 동안 엘레베이터가 멈췄다. 아니, 멈춰있다기엔 위로 아래로 흔들렸다. 약 10분간. 그 10분은 흡사 30분처럼 여겨졌다. 난 이렇게 인생이 마감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재난사고는 이렇게 순식간에, 갑자기, 벌어지는구나 싶었고, 일개 개인은 그 상황에서 그 어떤 대처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들었다.



엘레베이터에 갇힌 그 날은 LA에 놀러온 친구 부부를 만난 날이었다. 오랜만에 LA에서 재회한 우리들은 LA 다운타운에 위치한 한 루프탑 식당을 찾았다. 'Perch'로 명명되는 그 식당은 오래된 건물 꼭대기층에 위치하고 있어서 야경이 끝내줬다. 식당은 16층 건물 꼭대기에 있었고, 우리 두 커플은 '라라랜드'의 밤 풍경을 감상하며 화이트 와인 두 병을 곁들여 맛있는 저녁 식사를 마쳤다. 우리는 2차 장소로 가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가는 엘레베이터에 몸을 실었고, 문이 닫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엘레베이터가 내려가지 않고 위 아래로 흔들리고 있었다. 


엘레베이터가 내려가지 않고 위 아래로 흔들리자 엘레베이터 앞쪽에 타고 있던 승객 한 명이 비상벨을 눌렀다. 하지만 오래된 엘레베이터인만큼 비상벨을 누른다 해도 경비원과 별다른 소통이 이뤄지진 않았다. 통신 기능이 탑재되지 않은 비상벨 시스템이었다. 따르르릉- 큰 비상벨 소리만 반복해서 들릴 뿐, 아무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고 엘레베이터는 여전히 위 아래로 흔들리고 있었다.


엘레베이터에 타고 있던 승객은 어림잡아 열댓명. 그중 덩치가 큰 한 여성분이 갑작스럽게 호흡곤란을 일으켰다. 그 여성분은 숨을 헉헉대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옆에 있던 승객들은 "Are you okay?"를 외치며, 911에 신고전화를 했다. 다행스럽게도 휴대폰은 제 기능을 했다. 911과 연락이 닿은 승객은 호흡곤란이 온 피해 여성의 귀에 전화를 가져다댔다. 여성은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소방대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겨우 정신을 다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와중에 나와 남편, 그리고 친구 부부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이런게 TV에서 보던 사고구나, 를 실감했다. 그리고 이런 사고를 통해 내가 이곳에서 생의 끝을 맞이할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엘레베이터는 너무 좁았고, 쉴새 없이 위 아래로 흔들렸다. 이 좁은 장소는 내가 세상에서 보게 될 마지막 장소일지도 몰랐다. 


친구가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 살 수 있어...


아, 이 무슨 재난 영화에서나 볼 법한 대사인가. 하지만 당시만해도 웃음이 나지 않았다. 우린 진지했고, 심각했다. 생의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머리에 스치는 생각은 집에 있는 두 아이들 뿐이었다. 놀러 나온 엄마와 아빠가 엘레베이터에 갇혀 하늘나라로 간다면, 이 불쌍한 두 아이는 어쩌면 좋나. 고아가 될 지 모를 두 아이 생각에 죄책감과 불안감이 더 크게 올라왔다. 친정부모님께 카톡으로 마지막 메시지를 남겨야 하나 잠시 고민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에이 설마, 하는 마음으로 휴대폰을 꾹 잡았다.


길고 길었던 10분이 지나고 이윽고 위 아래도 흔들리던 엘레베이터가 다시 16층으로 올라가 문이 열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작은 탄성 소리를 냈다. 다들 살았다는 안도감에 기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일부 승객은 레스토랑 입구 직원에게 가서 따져 물었다. 대체 엘레베이터가 왜 이러냐고. 직원은 표정에 아무런 미동도 없이 정원이 6명이라 그보다 많은 인원이 타면 가끔 일어나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죽다 살아난 사람들 앞에서 저토록 태연하게,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뻔뻔한 대답을 하는 직원 앞에서 우리는 말문이 막혔다. 엘레베이터 정원이 6명이라는 문구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고객들의 안전에 대응하는 레스토랑이라니...다시는 오지 말아야겠다. 


우리는 더이상 같은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자신이 없어 비상구를 이용해 그곳을 빠져나왔다. 우리 모두 얼이 나갔다. 우리는 아직도 다리가 미세하게 떨린다고, 살아있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그날 깨달았다. 사고는 이렇게 갑자기 무방비로 소리 소문없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사고 당사자는 잘못이 없다. 사고를 사전에 대비하지 않고, 고객들에게 제대로 된 안전지침을 알리지 않은 레스토랑 및 건물 관리자들에게 책임이 있을 뿐. 


살아있다는 사실이 감사한 동시에 내 삶의 의미도 명확해졌다. 죽음 앞의 상황에 놓이니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두 아이들. 적어도 아들 둘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건강하게 곁에서 지켜줘야 할 의무가 내겐 있다. 그러니 육아로 힘든 순간에도 가족 모두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며, 마음을 다스려야지 마음 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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