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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Jan 19. 2023

낭비하는 시간도 필요해

데이오프. 충전하는 하루


나는 30대가 어렵다. 개인적으로 10대, 20대 보다 더 어려운 게 30대라고 생각한다.


10대와 20대에는 가야할 길이 뚜렷했다. 10대에는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를 해야했고, 20대에는 졸업, 취업, 결혼을 향해 달려가야 했다. 개개인의 차이야 있겠지만, 대개 목표지점은 유사했다.


그런데 30대는 복잡하다. 단일한 길이 존재하지 않는다.


요즘에는 결혼을 하는 사람도 있고, 안 하는 사람도 있다. 아이를 낳는 부부도 있고, 딩크를 추구하는 부부도 있다. 한 직장에 오래 다니는 사람도 있고, 기회를 봐서 이직을 하거나 프리랜서의 삶 또는 창업에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색을 찾는 일이 30대에 이뤄지기 시작한다. 30대에 가야할 길은 10대, 20대와 비교해서 몇 가지 길로 좁혀지지 않는다. 앞에는 숱한 갈래길이 놓여있다. 


30대로 진입한지 어느덧 5년. 한국에서도 만 나이가 적용되는 법안이 통과돼 30대로서 살아갈 날이 2년 더 늘어났지만, 조급한 마음은 사그러들지 않는다. 40대가 되기 전에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은데, 때때로는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지 두려움과 불안감이 엄습한다.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성향 탓에 난 유독 겨울에 방황하곤 한다. 연말에 이어 새해에도 가시지 않는 우울함과 무기력함이 나를 감쌌다. 되돌아보면 감사할 일은 얼마든지 많았다. 가족들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더 바라면 안된다는게 이성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허무함과 덧없는 감정이 나를 쫓아다녔고, 잠시 '스톱' 사인을 켜고 싶었다.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낯선 곳으로 떠나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며, 삶의 또다른 이면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면 이 정체불명의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난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다. 남편과 두 아이를 두고 어디론가 훌쩍 떠날 여건도 그리고 직장을 관두고 백수생활을 할 여유도 없다. 현실을 살아내는 일만이 내가 이 삶을 책임감있게 살아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날은 월요일이었다. 마틴 루터킹 데이라 두 아이가 학교와 유치원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별다를 것 없는 월요일. 남편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출근을 했고, 나 또한 재택근무를 해야했다.


그런데 내 컨디션이 평소와 달랐다. 지난주부터 둘째와 첫째가 번갈아 아팠는데, 어젯밤에는 기어코 둘째가 또다시 열과 기침 감기를 앓았다. 새벽에 펄펄 끊는 몸으로 날 찾아온 둘째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밤새 둘째 옆에 누워 선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 눈에 졸음을 데롱데롱 매단 채로 겨우 눈을 떠 밤새 쌓인 카톡방의 메시지들을 보자 아찔한 감정이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일상을 살아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늘해야 할 업무들을 하나씩 떠올리고나니, 몸과 정신이 절인 배추처럼 축 쳐졌다.


'오늘 난 도저히 힘이 나지 않는다. 병가를 내야겠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평소 난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거나 지독한 감기를 않지 않는 한 나를 위해 병가를 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1년에 주어지는 단 6일의 병가. 그 병가는 오로지 아이들을 위한 것으로 남겨둬야 했다. 아이들이 아픈 일은 부지기수고, 아픈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가고, 돌봐야 하는 일은 나의 몫이기 때문에 병가는 아이들이 아픈 경우를 위해 아껴둬야 했다.


하지만 그날만은 달랐다. 몇 년 만에 날 위한 병가를 처음으로 냈다. 컨디션은 저조했지만, 지독한 독감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도.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다시 일어날 힘을 내기 위해서 낸 병가였다.




하루 종일 난 이불 안에 있었다. 책을 읽다 잠들고, 영상을 보다 잠들고를 반복했다. 흡사 내가 임신을 한 게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들 정도로 초기 임산부처럼 잠이 쏟아졌다.


업무에 쫓기지 않고, 읽고 싶은 책과 영상을 즐기며 침대에 누워본 일이 얼마만인가. 그 넉넉한 여유가 내 마음에 숨 쉴 구멍을 내주었다. 학교와 유치원이 쉬는 날이어서 라이드에 쫓길 일도 없고, 아이들은 둘이서도 잘 놀았다. 중간중간 아이들이 싸우는 일을 중재하기만 해주면, 아이들에게 크게 손이 가지 않았다.


덕분에 오랜만에 '낭비하는' 시간을 힘껏 즐겼다. 그 시간만큼은 무언가를 생산하고,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쓰는 시간이 아니었다. 비생산적인 시간이 나에게 다시 긍정의 힘을 불어넣었다.


하루 푹 쉰 덕분에 다시 본래의 나로 돌아왔다. 우울함 감정은 신기하게도 사라졌다. 긍정의 기운이 몸에 돌자, '내가 왜 우울했더라'하며 과거의 나에게 갸우뚱해진다. 낭비하는 시간 덕분에 삶의 희망을 다시금 찾았다.


또다시 좌절하고, 번아웃에 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어쩌면 계속 고뇌하고, 방황하는 건 인간이 살아가는 한 숙명처럼 겪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주저앉지 않고, 낭비하는 시간 하루쯤은 나에게 보상으로 내어주며, 또다시 이 삶을 살아갈 힘을 얻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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